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그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 번째 육필일기가 2016년 부활주일에 맞춰 출간되었다.
<로제타 홀 일기 2>에는 1890년 9월 24일부터 1891년 5월 17일까지, 약 8개월 동안의 일상의자취가 담겨 있다. 로제타가 중간 기착지인 일본 각지에 머무는 동안의 생활,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까지 한 달간의 여정, 서울에서 첫 7개월간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부임지 서울의 관문 제물포에 들어오던 날의 소회를 비롯해, 환자들을 돌보고 여의사 교육을 시키는 등 한국에서의 의료 사역 초기 모습, 한국에서 맞은 첫 추수감사절 회고, 남성들에게 차별대우 받는 조선 여인들의 처지 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순간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며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늘 새롭게 하던 로제타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그녀가 어떤 자세로 선교 사명을 감당해 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던 초기 역사에 관심 있는 평신도뿐 아니라, 한국 교회사와 선교 사역을 연구하는 학자 및 신학생, 한국 근대사와 관련한 여러 기관들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준다.
<로제타 홀 일기>의 특징
*제1부는 일기 원본 사진 아래에 해당 부분의 우리말 번역을 실었다. 로제타 홀이 필요에 따라 일기 중간 중간에 붙여 둔 스크랩도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 제2부는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하여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한국을 위해 헌신한 첫 의료선교사 로제타의 의료사역은 물론,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현장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속에서
■ 길고 길었던 뭍과 바다에서의 여행은 끝이 나고, 힘써 일할 사역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눈’이 나를 살피고 계심을 느낀다. 그가 나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셨고 친히 나를 위하여 할 일을 ‘선택’해 주셨으며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아 주셨다. 이제 그가 나를 ‘행하며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_1890년 10월 13일
■ 나는 일 년에 몇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영혼을 치유하시는 분을 만나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렇지만 거대한 것들을 꿈꾸지 않고 그때그때, 매일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언어를 다 습득할 때쯤이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나은 자세인 것 같다. _1891년 3월 7일
■ 점동은 튼튼하고 건강한 열네 살 소녀이며 영어도 잘 구사한다. 재빠르고 영리하여 훈련시키고 싶도록 탐나는 학생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에 그녀 스스로 나를 도와주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로스와일러 양과 스크랜턴 부인이 동의한다면 두 소녀 모두 맡아 훈련시킬 생각이다. …나는 그들을 선택함에 바른 인도를 받았다고 믿는다. _1890년 10월 24일
■ 예수님은 우리 선교사들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예수님께서는 늘 마음으로 자기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임을 의식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위하여 행동하지 않고 보내신 이를 위해 행동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얼마나 멀리 있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주님께서 내 머리에 주입시켜 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말이다. _1891년 5월 17일
차례
동반구에서의 삶 9
색인/약력/출판물 221
Life in the Eastern Hemisphere 227
Index/Timeline/Publication 327
해설 332
저자
로제타 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김현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미국 하버-UCLA 메디컬센터에서 내과 전공의, 하버-UCLA 메디컬센터와 에머리 의과대학에서 혈액학·종양학 전임의와 인디애나 주 그레이터 라파예트 종양학연구소 주치의를 역임했다.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키마운틴 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의료선교사의 소망을 가지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전 세계를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평양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생활 중 알게 된 선교사 후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선교 자료들이 유실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10년 에스더재단을 설립했다.
강현희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였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현재 미국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에스더재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내 저소득층과 노인들의 회계 및 세금 문제를 도와주는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