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주님의 사역을 위해 쓰임 받기를 나는 소망한다.”_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한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첫 의료선교사로제타 홀의 사역 여정을 담은 일기 전4권 완간!
초창기 선교사들의 행적을 담은 중요 사료의 가치를 더하다
120여 년 전 이 땅에서 헌신한 로제타 홀의 숨결을 되살리다
결혼과 평양 선교, 남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김창식 목사와 에스더에 대한 기록들
윌리엄 홀의 순직으로 마치지 못한 일기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52,000원 46,800원
로제타 홀 (Rosetta S. Hall)
김현수, 강현희 (역)
2016. 11. 29
양장 / 428 Pages
9788936511913
품절
“이곳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주님의 사역을 위해 쓰임 받기를 나는 소망한다.”_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한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첫 의료선교사로제타 홀의 사역 여정을 담은 일기 전4권 완간!
| 무게 | 1070 g |
|---|---|
| 크기 | 210 × 288 mm |
로제타 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역자
동반구에서의 삶 9
부록/색인/약력/출판물 245
Life in the Eastern Hemisphere 271
Appendix/Index/Timeline/Publication 389
해설 416
■ 집안 일을 아무리 간단히 해도, 이 일과 병원 사역 틈새에서 한국어 공부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 글을 읽거나 쓸 시간은 더더욱 없다. 이곳 아펜젤러 씨의 서재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10년 전에 내가 지금처럼 이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면 읽지 않고는 몇 주도 못 배겼을 것이다. 내가 무척 읽고 싶어 했던 호손의 책들과 앨리스와 피비 캐리의 시들, 그리고 내 마음을 즐겁게 했을 여러 가지 다른 책들도 있다. 당장이라도 그 책들을 읽고 싶지만 포기해야 한다.
_1892년 10월 17일 일기에서
■ 의사 선생은 창식을 보러 갈 때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하여 울고 만다. 그들이 창식을 오 씨나 한 씨보다 더 심하게 때리고 위협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풀려나면 복음 전파를 그만 두겠느냐는 물음에도 계속 전파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울’(Korean Paul)로 인해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_1894년 5월 11일 일기에서
■ 지난 한 해 동안 이 소녀에게 일어난 영적 성장은 실로 놀랍다. … 에스더는 성경 공부도 하는데, 성령께서 스승이 되어 그녀를 가르치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해도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무척 잘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 분별력이 있고 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이 씨 부인까지도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 에스더의 인격의 깊이는 그녀를 잘 아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외모나 태도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로 깊은 인격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는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_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 평양은 거의 죽은 도시 같구려. 한국인들이 막 돌아오기 시작했소.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있으며, 우리는 사역에 큰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오. 땅이 부드러워져 옥토가 되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고 있소. 주님을 위한 우리 사역에서 지금보다 더 희망적으로 보인 적이 없소.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게 기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 믿는다오.
_1894년 10월 8일 윌리엄 홀의 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