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에 관한 한 현존하는 최고의 전기
-더글러스 그레셤(C. S. 루이스의 아들)“그린과 후퍼가 이미 훌륭한 C. S. 루이스 전기를 펴냈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루이스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전 세계에서 그의 책들이 계속 팔려 나가고 있다고 해서 그의 전기를 또 하나 쓴다는 것이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프롤로그(11쪽)에서
위의 인용문은 《루이스와 잭》(Jack : A Life of C. S. Lewis)의 저자인 조지 세이어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내용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점검하는 것치고는 자못 냉정한데, 오히려 그 솔직함이 또 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정말, 이미 루이스의 전기가 한두 권이 아닌 상황에서 이 책은 ‘그 나머지 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얼마나 현저히 다른가. 또 얼마나 탁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 책의 특징
1. 새롭게 ‘잭 루이스’을 만나다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 영문과 교수이자 시인, 문학비평가, 무엇보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C. S. 루이스. 그러나 루이스와 절친한 사람들은 그를 늘 ‘잭’이라고 불렀다. 대외적으로는 탁월한 논증가요 문학가였던 루이스지만, 그의 삶은 통쾌한 변증만큼 그렇게 시원하지도, 확 풀리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평생 아버지와 불화했으며, 가족들에게조차 무어 부인과의 관계를 의심받고, 친구보다 더 가까웠던 형 워렌의 알코올중독으로 늘 걱정했으며, 사랑했던 여인 조이 그레셤을 친구들은 싫어했고……. 각 장(章)에 묘사된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듯하면서도 굴곡 많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딱딱한 논증가 루이스 교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한층 친근하고 친구 같은 잭만 남게 된다.
2.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온전히 객관적인
조지 세이어가 다른 루이스 전기들보다 확연히 차이 나게 탁월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전기들이 참고했던 루이스 관련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 다른 전기들은 활용하지 못한 자료를 인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워렌 해밀턴 루이스 소령이 쓴 백만 단어 분량의 일기와 웨이드 센터(일리노이 주 휘튼 칼리지 내에 있는 연구소로 C. S. 루이스의 관련 자료를 모두 수집해서 모아 둔 곳)의 라일 도싯 교수가 수집하고 정리한 조이 데이빗먼에 대한 자료, 스티븐 스코필드가 꼼꼼하게 모아서 <캐나다 C. S. 루이스 저널>에 실은 방대한 자료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고한 밑받침이 된 것은 저자인 조지 세이어와 루이스가 친구로 지내며 쌓은 29년간의 우정과 깊은 신뢰이다. 루이스와 보낸 추억의 장면도 간간이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친구로서 잭의 속내를 이해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면과 더불어, 탄탄한 연구 자료가 바탕이 되어 온전한 객관성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읽는 독자들 스스로가 루이스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3. 빛나는 저작들의 탄생을 엿보다
표면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루이스의 독특한 인간관계이지만, 조금만 더 신중히 책을 읽는다면, 이 모든 일상사의 이면을 연결하는 하나의 중심선을 감지할 수 있다. 즉, 루이스는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또 유신론자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과 사상을 글로 승화시켰는데, 그 결과로 우리는 《순례자의 귀향》, <우주 3부작 시리즈>, 《예기치 못한 기쁨》,《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네 가지 사랑》 등 그의 탁월한 저작의 탄생 과정을 속속들이 만나게 된다.
루이스는 ‘개인적 이설’(저자의 사생활에 대한 연구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거나 그의 저작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늘 반격했다(449p). 그런 친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지 세이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의 생애를 밝히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루이스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수록 점차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로 루이스 아닌 루이스의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그 왜곡을 막으며 루이스의 참모습을 알리기 위함에서였다.
몇 년 째,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을 출간하며 C. S. 루이스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홍성사가, 이제 한국에서도 C. S. 루이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루이스 마니아’ 층까지 형성된 시점에 와서, 굳이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힘써 출간하게 된 것도 바로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 시절 떠들썩하게 이름만 회자되고 가볍게 취급되다 사라지는 그런 작가가 되지 않기를, 루이스가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녹여 낸 저작들이 좀더 ‘올바르고’ 좀더 ‘깊이’ 독자들과 조우하기를 바라는 열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