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공부벌레, 동양인은 NBA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존중의 리더십으로 경기를 압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가 코트에 떴다!
1. 린새너티, 제레미 린에 빠지다
2012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타임〉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모두 6명의 스포츠 스타가 이름을 올렸다. 바르셀로나의 득점 기계 리오넬 메시, 의족을 한 상태로 올림픽에 출전해 세계를 놀라게 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티보마니아’ 열풍의 주인공 쿼터백 팀 티보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뉴욕 닉스의 동양인 가드 제레미 린.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벤치와 하부 리그를 오가던 그가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은 명단 맨 윗줄을 차지했다. 단숨에 미 전역을 사로잡은 제레미 린은 누구인가?
여러 스포츠 스타와 함께 책을 집필하고, 스포츠 매체에 글을 기고해 온 저자가 제레미는 물론이고 코치와 동료 선수 등 주변 사람들을 심층 취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2. 아무도 원하지 않던 선수
흑인과 백인이 주름잡는 NBA에서 동양인 가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편견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양인은 NBA 무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레미가 하버드대 농구팀에서 활약하던 2009년 발표된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디비전 I 대학 농구부 소속 아시아계 미국인 남자 선수는 고작 18명이다. 이백 명당 한 명꼴이다. 그러니 아시아계 선수들은 스카우터들의 수첩에 이름도 올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대만인 이민자 2세인 제레미는 캘리포니아 주를 대표하는 고교 선수로 활약했다. 여러 언론의 뜨거운 찬사는 물론이고 포스트 시즌에 수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어떤 대학도 그를 데려오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기존의 대학 농구 스타와 제레미의 모습은 다르다고 여겼을 것이다. 결국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하버드대에 진학해 농구팀 크림슨에서 활약했다. 그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크림슨은 제레미가 주축이 되면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제레미는 대학 농구 선수 중 유일하게 득점, 리바운드, 도움, 스틸, 블로킹, 야투, 자유투, 3점슛 부문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2010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NBA 팀은 한 곳도 없었다. 아이비리그 출신은 동양인만큼이나 NBA에서 낯선 존재였다. 하계 리그를 거쳐 어렵사리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입단했지만, 질 것이 뻔한 경기에나 투입되는 ‘벤치 워머’에 그치다 방출되었다. 곧이어 이적한 팀 휴스턴 로키츠에서는 입단한 지 2주 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마침 가드가 필요했던 뉴욕 닉스에 입단하게 되었지만, 닉스에서도 그는 하부 리그를 오가야 했다.
3. 존중의 리더십과 굳은 믿음
세계 인구의 99.99999퍼센트보다 키가 크고 강한 NBA 선수들 속에서 키 191센티미터에 왜소한 체격의 제레미 린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훈련한 선수들은 그가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 훌륭한 선수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닉스의 스타 카멜로 앤서니는 코치에게 부상으로 인한 자신 대신 제레미를 기용해 보라고 적극 제안했다. 25득점에 리바운드 다섯 개, 제레미는 공격적인 쇼를 펼쳐 보였다.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 그는 팀의 5연승을 이끌었다.
어린 시절에는 시합에 지더라도 함께 뛰는 친구들에게 골고루 패스해 기회를 줬고, 하부 리그로 강등되었을 땐 일반석에 앉아야 하는 장신의 동료를 위해 자신의 일등석을 양보하는 마음 씀씀이를 가진 제레미였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존중의 리더십’은 큰 경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아웃라이어》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피아니스트가 되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든 만 시간은 들여야 한다고 했다. 다섯 살 때 농구를 시작해 슛, 패스, 리바운드, 방어 등 경기의 모든 면에서 제레미는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사람들은 ‘NBA의 린데렐라’ 등 수많은 신조어를 쏟아 내며 신인 선수를 놀라워했지만, 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준비된 선수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기한다는 팀 티보처럼 제레미도 그의 신앙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제레미는 이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 냈다. 진짜 ‘린새너티’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는 굳은 믿음으로 가로막는 벽들을 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