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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을 읽는다 2

21,600

정용섭 (지은이)
2019-06-03
720쪽
150*215mm
936g
ISBN : 978893651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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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6,000매 분량의 마가복음 묵상과 독해
진리 = 근본에의 질문을 쉬지 않는 것


《마가복음을 읽는다》는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 비평 시리즈〉 등을 지은 정용섭 목사의 4년간에 걸친 마가복음 묵상의 결실이다. 각 688쪽, 720쪽의 분량은 저자의 묵상이 오랜 시간에 걸친 자기 인내의 과정이었음을 드러낸다. 지은이는 마가복음 열여섯 장을 한 구절씩 혹은 한 문단씩 들여다보며 구절 너머의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마가복음의 서두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신학과 인문학의 다리를 놓으면서 마가복음의 깊고 넓은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마가복음을 읽는다》 2권은 마가복음 8~16장까지를 다룬다. 특히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예수님의 고난, 죽음, 부활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문자적 해석을 넘어서 그리스도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룬다. 그것은 이 세상의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생명과 구원을 새로운 차원으로 두는 신앙이다. 기독교는 휴머니즘과 동일시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차원의 생명이다.
지은이는 업적을 이루려는 목회자들에게 먼저 자기 구원에 천착할 것을 제안한다. 목회에 성공해도 자기 목숨(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생명의 현실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고 있는가? 이것은 교리문답이 아니라 그 대답의 깊이가 늘 달라지는 질문이다. 참된 복음은 21세기 자연과학의 성과 앞에서도 기독교의 생명 경험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큰 특징은 질문에 있다. 지은이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 진리, 생명, 영생의 의미에 대해 우리의 통념을 반성하게 만든다. 통념은 우리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행동지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만든다. 《마가복음을 읽는다》 2권은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의 통념과 다른 좁은 길임을 설파하며 그 길을 따라 살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저자

정용섭 

차례

머리말

8장
칠병이어 8:1-10 / 예수, 탄식하시다 8:11-13 / 헤롯의 누룩 8:14-21 / 예수, 시각장애인을 고치시다 8:22-26 / 예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8:27-33 / 제자의 길과 십자가 8:34-9:1

9장
예수, 변형되시다 9:2-13 / 예수, 귀신을 꾸짖으시다 9:14-29 /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 9:30-32 / 섬기는 사람 9:33-37 /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9:38-41 / 실족에 대해서 9:42-50

10장
이혼에 대해서 10:1-12 / 어린이와 하나님 나라 10:13-16 / 영생과 재물 10:17-22 / 소유와 하나님 나라 10:23-31 / 고난과 부활 예고 10:32-34 / 섬김의 영성 10:35-45 / 예수, 바디매오를 부르시다 10:46-52

11장
예수, 예루살렘 입성하시다 11:1-11 / 무화과나무 에피소드 11:12-14, 20-25 / 예수, 성전을 정화하시다 11:15-19 / 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12장
포도원 주인의 분노 12:1-12 /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12:13-17 / 부활 논쟁 12:18-27 / 계명에 대한 질문 12:28-34 / 예수, 성전에서 가르치시다 12:35-37 / 서기관을 조심하라 12:38-40 / 헌금에 대해서 12:41-44

13장
성전 붕괴 예고 13:1-2 / 묵시적 재난에 대해 13:3-27 / 깨어 있으라 13:28-37

14장
예수 살해 음모의 시작 14:1-2 / 고귀한 낭비 14:3-9 / 배신자 가룟 유다 14:10-11 / 유월절 식탁 14:12-21 / 예수, 떡을 떼시다 14:22-26 / 예수,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다 14:27-31 / 예수,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14:32-42 / 예수, 체포당하시다 14:43-52 / 예수, 종교재판 받으시다 14:53-65 / 베드로, 예수를 부인하다 14:66-72

15장
예수, 빌라도 법정에 서시다 15:1-5 / 빌라도와 바라바 15:6-15 / 예수, 조롱당하시다 15:16-20 / 예수, 십자가에 달리시다 15:21-32 / 예수, 숨을 거두시다 15:33-41 / 예수, 무덤에 묻히시다 15:42-47

16장
예수, 살아나시다 16:1-8 / 예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 16:9-13 / 예수, 복음 전파를 명하시다 16:14-18 / 예수, 승천하시다 16:19-20

책속에서

P. 67
우리는 어느 순간에 생명을 경험합니까? 아니, 생명이 무언가, 하는 질문이 더 우선이겠군요. 이 두 질문을 그냥 함께 묶어서 생각해도 좋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느 때 어떤 것을 통해서 정말 살아 있다는 경험을 할까요? 생명을 우리말로는 삶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거 아니냐, 하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예, 지금 우리는 살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곧 죽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죽기 위해서 사는지 모르겠군요. 죽어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부조리라는 까뮈의 말은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지만 이것은 시간이라는 범주에서만 타당한 말입니다. _ 예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8:27-33)  
P. 227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무엇이 생명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경험할까요? 예수 부활에서 궁극적인 생명을 경험한다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한두 번의 말로 끝내도 좋을 정도로 간단하고 실증적인 생명이 아니라 종말까지 열린, 태초의 창조 사건과 동일한, 그래서 우리가 신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생명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비록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 영적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죽는 순간에 누구나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의 몸을 박테리아나 구더기가 먹거나, 불이 태우겠지요.
이런 점에서 지옥은 이 생명 표상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도 명암 기법을 통해서 어떤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지옥은 생명을 밝혀주기 위한 어두운 그림자와 같습니다. 밝은 빛을 놓치고 그림자에만 눈을 고정시킨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_ 실족에 대해서(9:42-50)  
P. 272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24절에 이어 26절에서 다시 놀랐다고 합니다. 그 놀라는 강도도 훨씬 강합니다. ‘매우’ 놀랐으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고 토를 달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구원도 당연히 그들이 먼저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고정 관념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크게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생각을 교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옳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채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냐, 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곡해한 것일 수도 있고, 적절하게 타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선입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이와 다를 게 없습니다. 온갖 종류의 선입관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큰 틀에서만 한 마디 한다면,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야만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좋은 학벌과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삶의 만족도와 비례한다는 생각이 개인과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선입관이겠지요. 제자들의 인격과 신앙이 잘못 되어서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단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경구가 여기에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경지에서 최선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그 너머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으니, 어쩝니까? _ 소유와 하나님 나라(10: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