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숨은 일꾼, 김경래 장로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와 교회사의 굴곡을 되짚어 보다
“나는 이 책의 출판을 바라지도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당신만이 겪은 한 세대의 공동 관심사를 후대의 누군가를 위해 남겨놓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요’라는 권유를 묵인하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친필 서신 40여 통을 사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도, 양화진과 순교자기념관에 스며든 비화들을 기탄없이 옮겨놓는 것도 위의 묵인에 속한다.
생업에 몰두하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가시오 오시오’ 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춰 시간을 내주고 지갑을 열었다. 동참해 준 많은 분들께 폐를 끼치고 신세를 져,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기자 30년, 장로 30년’의 삶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을 관통해 온 김경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생생한 증언과 고찰의 기록이, 역사적 의미가 깃든 140여 장의 사진들을 징검다리 삼아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김경래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당하기까지, 격변기 역사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가슴에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지면에 먹을 새겼다. ‘20세기 한국 언론이 보도한 10대 특종’으로 꼽히는 월남 파병 기사, 한국 경제를 뒤흔든 삼분三粉 폭리 사건과 사카린 밀수 사건 기사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1부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는 기자 김경래를 다루며, 월남 파병 특종 전말, 정․관계 진출의 숱한 유혹을 받으면서도 언론인의 본분을 지킨 까닭, 언론계 대선배인 오소백․홍종인 선생과의 에피소드, 고달팠던 시절 기자로 산다는 것과 편집국장으로서의 애환 등을 담아냈다.
김경래가 만난 사람과 사연들
기자 신분으로 그가 만난 사람, 그를 거쳐 간 사람은 참으로 많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함태영 부통령, 장도영 의장, 박정희 의장, 김형욱 정보부장, 정일권 총리, 김종필 정보부장, 이후락 실장, 한일회담의 주역 이동원 장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새마을운동을 주창한 김용기 장로,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시절의 이어령 박사, 작곡가 박재훈 목사, 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이들에 관한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로 김경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든다. 국정 운영에 관한 제언 등을 서신에 담아 박 대통령에 보내고 그에게서 40여 통의 친필 답신을 받은 이는 김경래뿐일 것. 월남 파병 기사로 인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박 의장을 처음 만나던 순간, 이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입성 제의를 받고 거절하던 순간 등을 회고하는 내용을 보며, 우리는 인간 박정희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된다.
세상의 빛으로
1982년 한경직 목사의 뜻밖의 부름을 받고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사무국장으로 취임한 그는 당시 분열된 교계와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던 교계 일들에 광폭적 시야와 속도를 더한다. 그가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렸을 때부터의 남다른 신앙 생활 때문인데, 2부 ‘행동하는 믿음으로’에서는 그의 가정사와 성장 과정이 소개된다. 또한 교회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했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다니엘학교, 기독실업인회, 기드온협회, 연예인교회, 매스컴선교회,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25기도모임 등 지금도 우리 귀에 익숙한 여러 기관과 단체를 조직하고 운동을 벌인 이가 바로 김경래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일들에 얽힌 사연과, 함께한 신앙 동지들의 이야기가 흥미를 더하는 한편 우리를 숙연케 한다.
주님의 그림자로
3부 ‘양화진 언덕에 서서’에는 김경래가 한경직 목사를 도와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여 온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경직 목사와 함께 일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한국 교회 연합 사업을 추진하며 보람되었던 일과 어렵고 힘겨웠던 일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1984년 한국 기독교계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는 한국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무려 40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참가한 가운데 여의도에서 열린 이 대회는 한국이 미국 다음의 제2의 선교 대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이 현장을 감독한 이가 김경래다. 대회의 기획․준비․진행 과정을 거쳐, 마친 뒤의 여러 일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한국 교회가 ‘선교 200주년의 빛’을 어떻게 밝혀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금은 한국 개신교의 성지로 거듭난 양화진楊花津, 그러나 이를 둘러싼 숱한 오해와 갈등으로 수년간 소송전訴訟戰을 벌인 이야기도 기탄없이 밝혀져 있다. 그간 일부 외국인 선교사 후손들,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 및 교단에 속한 언론에 의해 행해진 작태를 돌아보며, 우리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와 일그러진 자화상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히 양화진을 지키고 가꿔 온 손길들과 조우하며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그려 보게 된다.
빛을 닮은 그림자, 김경래의 삶을 기억하며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걸어온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 누구보다 가까이 서 있었던 사람. 역사의 주인공 뒤에서, 실무 책임자로 빛도 없고 이름도 없는 자리를 충실히 감당해 온 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거운 울림을 준다. 마지막 ‘덧붙이는 말’로 김경래 장로의 둘째 딸 김원숙 씨가 쓴 글은 우리에게 뜻밖의 사실을 일러 준다. 바깥일로 너무도 바빠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아버지의 내면에 해학과 웃음이 가득했다는 것. 희생을 먹고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간 수많은 윗세대를 떠올릴 때, 그의 웃음은 숙연해진 아랫세대의 어깨를 말없이 다독인다. 그리고 힘주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기보다는,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그가 세운 단체와 모임들을 볼 때, 책 제목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는 그에 대한 시대의 고백이기도 할 터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누군가에겐 김원숙 씨의 글 제목 ‘우리 아버지’가 본문의 어떤 내용보다 가슴에 오래 남을 듯싶다.
*책에 수록된 사진 가운데 (사진의 저작권은 김경래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_1972년경 <경향신문> 편집국장 시절.
_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될 때가지 그에게 받은 편지가 40여 통에 이른다. 김경래는 언론인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인으로, 사회의 중견 지도자로 편지에 비판과 제언을 담아 보냈다.
_한국 교회사에 이제껏 없었던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그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1984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에 국내와 해외에서 참가한 인원이 총 400만 명에 달했다.
_김경래 장로는 실무 책임자로서 수시로 현장을 감독하고 자원봉사 교육 장소를 찾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_어느 봄날, 광주제일교회에서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 준비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경직 목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