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질문이 도외시된 신앙? 살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매일 매일 묻지 않는 거룩?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보다는 나의 결정에 하나님을 끌어 내리고자 하는 어린아이의 억지와 무엇이 다른가? 우린, 왜 믿는가? 아니, 믿는 까닭이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정직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저자
임영수 1941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세대 연합신학원을 수료한 후 스위스 융 연구소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헬무트 틸리케와 칼 바르트․디트리히 본회퍼, 위르겐 몰트만, 프랜시스 쉐퍼, 안셀름 그륀, 토마스 머튼, 리처드 포스터 등을 깊이 연구했고, 특히 폴 투르니에 박사와는 융 연구소에 있을 당시 직접 만나 깊은 교유(交遊)를 나누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광교회, 남대문교회, 영락교회, 주님의교회에서 목회하였으며 지금은 개신교 영성공동체인 모새골(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임영수 목사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열흘 동안 배우는 주기도문 학교》, 《2주 동안 배우는 사도신경 학교》(이상 홍성사), 《제자로 길들여진 그리스도인》(한국장로교출판사), 《빈집의 위기》(신앙세계사) 등이 있다.
차례
인생이란 무엇인가 / 인간의 길 / 신뢰의 길 / 믿음의 시련 / 새로운 길 / 여우를 잡아라 / 느헤미야의 기도 / 아름다운 일 / 오순절에 오신 성령 / 범사에 감사하라 / 태초에 / 동산 관리자로서 인간 / 돕는 베필 / 깨어진 삷 / 형제 살인 / 살아 있는 말씀 / 선택의 모델 / 순종의 마음 /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 / 우리에게 숨겨진 하나님 / 천국의 열쇠 / 우리를 도우시는 분 / 영적 분별력 / 지혜로운 자처럼 살라 / 삶과 휴식 /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 일어나 자리를 가지고 걸어가라 / 믿는 까닭이 무엇이냐 / 끈질긴 기도 / 거룩한 경험
책속에서
욥이 당한 그 견딜 수 없는 고난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삶까지 끊어 놓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욥에게 하나님과의 사귐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추가정보
[저자의 글] “밭에 묻혀 있는 보화”
어린 시절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필자는 성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게 깊었습니다. 때로는 성서를 읽어보려고 책을 펴들었다가 덮어버리고, 다시 책을 펴기를 여러 번 반목한 때도 있었습니다. 필자가 성서를 읽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성취하지 못하고 중단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어린 나에게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 전통, 문화로 가득 차 있는 성서라는 책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성서를 읽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충고를 듣고 좋은 사이 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강박관념에서 읽어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였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장성한 후에 성서와 점점 친근하게 되면서 성서는 나의 생애에 유일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성서를 항상 휴대해 가지고 다니곤 했습니다. 나는 신학을 하기로 결심한 후 어떤 서양 요리를 만드는 분을 통해서 감자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양 요리에서 감자를 가지고 스물 한 가지의 요리를 만든 다고 합니다. 거기서 나는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감자라는 하나의 재료로 때에 따라 적절한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 나에게 여간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나는 스스로 결심하기를 이 다음 내가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면 성서라는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말씀의 메뉴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목사가 되고 나서 겪는 고충은 그러한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마음 깊이 느껴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 전통, 문화에 깊이 묻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찾아내서 오늘의 상황을 사는 사람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사가 된 지 어언 18년이 되어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오직 이 일 하나만을 바르게 해 보려고 애써오고 있지만 언제나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뿐입니다.
인기 있는 설교를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정직한 설교를 해 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려고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둔한 표현력과 세련되지 못한 문체로 근본 뜻이 제대로 다 드러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곤 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염려 가운데서 늘 새롭게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은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모든 염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교만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동안 영락교회 강단에서 주일마다 선포했던 말씀을 금번에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내놓게 된 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이 선포된 말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글/임영수 목사(저자, 쿰회보 94.02)
[저자의 글]
“현대인의 굶주림”
어떤 분의 ‘현대인의 굶주림’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물질적인 풍요의 시대를 누리고 있으나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소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소외의 밑바닥에는 진정한 만남에 대한 굶주림이 있다.” 이 만남에 대한 굶주림으로 네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현대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이웃이 없기 때문에 대화의 굶주림을 느낀다.
둘째,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 내게 와서 닿기를 원하는 접촉에 대한 굶주림을 느낀다.
셋째, 현대인은 성적으로 가장 개방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사랑과 성에 대한 굶주림을 느낀다.
넷째, 현대인은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에 대한 굶주림을 느낀다.
현대는 모든 면에 있어서 풍요로운 시대입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물질적인 면에서, 생활의 편리한 점에서, 먹고 입는 것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대인의 이 굶주림은 물질적인 것으로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감각적인 훈련을 통해서 채울 수도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모스의 말씀과 같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기갈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없어 기갈”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대화자, 우리를 진정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분,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분, 나 자신을 진정 볼 수 있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 분과의 인격적인 친교 가운데서 우리의 굶주림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 분과의 친교는 무한히 신비롭고, 넓고, 깊고, 높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어떻게 바른 인격적 친교를 가질 수 있을까? 그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그 분과 인격적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는 독백이나,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전 존재를 기울여야 할 존재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고 계시는 그 계획과 뜻에 동참해 가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 길을 어떻게 닦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그러한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드리기 위해 그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글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세대는 진정 살아가기 힘든 시대입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 하나님과 깊은 내적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떤 외적 환경의 변화에도 동요없이 언제나 풍성함을 나타내 보입니다. 진실한 수평적 삶은 깊은 수직적 삶을 통해서만 나타납니다. 진실한 수직적 삶은 기도의 삶을 통해서 이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