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닿지 않는 남태평양.
[보도자료]
“돌아올 길을 생각지 말고 남태평양의 파도를 넘어라!”
생사를 가르는 거친 파도를 넘어 남태평양 미전도 부족을 위해 ‘하나님의 카누’에 올라탄
이여호수아 선교사와 원주민 사역자들의 좌충우돌 선교 현장 파노라마!!
고든 다르시 릴로(솔로몬제도 수상), 김종희(<뉴스앤조이> 대표),
알란 케마케자(솔로몬제도 국회의장), 이승현(뉴질랜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인),
이영표(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추천!!
●문명이 닿지 않는 남태평양 미전도 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 다수 수록
●바에니 쑤웅아 : 솔로몬제도 원주민들이 이여호수아 선교사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꽈이오 부족의 거룩한 희생’이라는 뜻이다.
1. 선교사 감별사, 이여호수아 선교사를 감별하다
교회 개혁을 위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올곧게 내온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는 2010년 4월, 뉴질랜드 환태평양선교회 대표 이여호수아 목사의 선교 현장 답사에 나선다. 그간 홍성사 정애주 대표에게서 그에 대해 많이 전해 들었지만, 그의 사역이 ‘진짜’인지,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기자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방문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기자의 눈과 ‘선교사 감별사’로서의 마음을 담고 갔다. 그곳에서 한 달간 머물며 말로만 듣던 남태평양 섬나라 오지 부락에 들어가 취재를 하면서, 그간 남태평양 선교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기도하지 못한 채 현장에 온 것을 반성한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한 번 더 방문한 뒤 이렇게 적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를 감별해 내는 은총과 감동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김종희 대표가 두 달간의 현장 취재 및 인터뷰를 통해 골조를 세운 글에 이여호수아 선교사가 살을 입혀 완성했다. 두 사람의 치열한 소통과 속 깊은 교제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감동 스토리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 가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가 만난 이여호수아 선교사는 누구며,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사역하고 있을까?
2. 이여호수아 선교사는
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신앙에 회의적이었던 그는 20대 초반 공군에서 항공 관제사로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하여 해외 인사 관리 업무를 맡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으나, 인사 청탁, 뇌물 등 부정부패의 사슬 가운데서 심한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 마침 이슬람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는데, 현지인도 이겨 내기 어려운 풍토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하룻밤을 보내며 ‘말뿐이던 기독교인’을 벗고 예수님께로 온전히 돌아왔다. 이후 그곳에 지하 교회를 세우고 소수의 동역자들과 사역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결혼했다. 아내는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레슨을 받을 정도로 유복하게 자랐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세계무대로 나가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결혼과 동시에 해외 선교에 헌신하기로 서원했다. 그리고 1993년 11월 4일, 두 살, 네 살, 여섯 살 난 아이들을 데리고 머나먼 땅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람들이 이주해 모여 사는 오클랜드 남쪽 오타후후에서 마약, 알코올,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왜소해 보이는 동양인이 얼마나 버티는지 지켜보자며 냉소를 퍼붓던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남태평양의 고향 섬나라를 섬기는 사역자들로 바뀌어 갔다. 그는 “교회의 부흥은 예배당이 꽉 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로 나감으로써 텅 비게 되는 날 이루어진다”는 믿음 아래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목회와 선교 사역을 병행해 오고 있다. 또한 태평양 원주민들의 신앙 성숙을 놓고 기도하던 중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는 호세아 4장 6절 말씀을 받고 1998년 오클랜드에 ‘Tyrannus Bible School’(두란노성경학교)을 열어 원주민들에게 신학 훈련을 해왔다. 지금은 환태평양 지역 선교사를 양성할 차세대를 위한 환태평양 선교학교 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찜통 같은 경비행기, 금방이라도 파도가 삼켜 버릴 것 같은 작은 엔진보트, 노를 젓지 않으면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카누 등에 의지해 정부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태평양의 섬들을 찾아가 ‘예수’ 이름을 전하고 있는 이여호수아 선교사. 그를 통해 조상신 숭배와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부족 간에 갈등이 심했던 그곳에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이 책의 무대인 21세기 땅끝, 남태평양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해 인근 적도 부근의 섬들을 통틀어 오세아니아라고 한다. 이곳에는 2만 5천여 개의 섬들이 하늘의 별처럼 깔려 있다. 그리고 이를 민족학상으로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로 크게 삼등분한다.
‘작은 섬들’이라는 뜻의 ‘미크로네시아’(Micronesia)는 서태평양 적도 북쪽에 흩어져 있는 섬들을 일컫는다. 괌, 나우루, 팔라우, 마샬 같은 섬 지역이 해당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비교적 성격이 순하고 행동이 급하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편이다.
‘많은 섬들’이라는 뜻을 가진 ‘폴리네시아’(Polinesia)는 태평양 중·동남부에 펼쳐 있는 섬들을 일컫는다. 사모아, 통가, 투발루, 토켈라우, 쿡, 타히티, 하와이 등 태평양의 섬 대부분이 남태평양에 모여 있고 그중 폴리네시아에 가장 많은 섬들이 있다. 이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용감해서 겁 없이 자연에 도전하고, 오래전부터 협소한 섬 지역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온 만큼 항해술도 뛰어나다.
‘멜라네시아’(Melanesia)는 그리스어로 ‘검은 섬들’이라는 뜻을 가진 태평양 남부, 호주 동북쪽에 있는 섬들을 일컫는다. 피지·뉴칼레도니아(프랑스 영토), 바누아투, 솔로몬제도, 파푸아뉴기니 같은 섬들이 독립된 나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피부가 유난히 검고, 호전적이며,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었을 정도로 외부 문명과 차단된 채 살아왔다. 태고의 신석기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도처에 여전히 남아 있고 다양한 우상을 섬긴다.
이여호수아 선교사는 ‘폴리네시아’에서 이주해 온 원주민들을 훈련시켜 ‘멜라네시아’ 미전도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주선이 달나라를 다녀오는 시대에, 단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복음을 듣지 못하는 이들이 태평양에는 수없이 많다.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21세기 땅끝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이여호수아 선교사와 원주민 사역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오늘도 거친 파도를 넘어 카누를 젓고 있다.
4. 남태평양의 영적 상태
멜라네시아 섬나라 일부에는 아직 나체 부족들이 있으며, 신석기 수준의 원시 형태로 창과 활, 돌도끼를 사용하고 있다. 돌과 조개화폐로 물물 교환을 하고, 여자를 사고파는 풍습도 남아 있다. 여기에 섬나라 특유의 변질되지 않은 다양한 태고 무속 신앙이 이어져 온다. 조상신은 물론, 악령, 악어, 물고기, 뱀, 독수리 등을 신으로 숭배하는 섬 부족이 많다.
고등종교 가운데서는 여호와의 증인, 바하이교, 제칠일안식교, 모르몬교 등이 유난히 강세다. 미국과 호주에 있는 각 본부에서 이 지역 섬나라들을 엄청나게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 이러한 혜택은 거의 해안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개신교 선교 또한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런던선교사회는 남태평양에 성직자와 기술자 등을 남태평양에 파송했고, 1797년 3월 타히티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을 교두보로 정하고 태평양 선교 시대를 열었다. 알렌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1884년에 들어온 것에 비해 87년이나 빨랐던 셈이다. 태평양 섬나라 도시에는 교회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처음 선교사들의 신앙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지 않아서 복음의 명맥이 끊어졌다. 그로 인해 섬나라 고유 전통과 문화와 종교가 혼합되어 이상한 교회로 변질되었다. 인도자와 예배자들이 환각식물을 먹고 엑스타시 상태에서 예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태평양에는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 가는 이들이 있고, 복음을 들었지만 물을 주고 양육하는 이가 없어 믿음이 변질되고 메말라 죽어 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살릴 길은 참된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