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혜산 박두진이 마지막 남긴 76편의 유고시 모음
박두진 선생 추모 1주기에 맞추어 마지막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망라한 시집이 《당신의 사랑 앞에》라는 제목으로 홍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1980년대 후반에 발표된 몇 작품과 작고년도인 1998년 9월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 《시와 시학》, 《열린 마음》 등에 발표된 작품 등 7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
총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평생 ‘자연과 인간과 신’의 길을 걸어 온 시인 박두진의 마지막 여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제1부 ‘고향길’은 그의 시와 삶의 원체험이 되어 준 경기도 안성 청룡산 벌판 일대의 별과 바람과 태양과 인간사적 체험을 반추하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2부 ‘빛에게 사랑에게’에는 삶의 근간을 이루었던 기독교적 체험과 사색의 내용이 난(蘭)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함께 집약되어 있어, 신 앞에 서서 인간의 나약성과 근원적 오류를 떨림으로 고백하는 노시인의 인간적 면모와 신앙적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행사시들이 수록된 제3부 ‘더 멀리, 더 오래’에 이어지는 제4부 ‘새 하늘, 새 땅’은 시인의 시적 편력의 최후를 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4부를 채우고 있는 시적 이미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휘황한 빛’이다. ‘빛’의 이미지는 초기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서,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지상적인 속성을 벗어나 절대적인 세계에 대한 염원과 체험을 노래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박두진의 시 세계
평생을 지고한 윤리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우주의식 속에서 살다 간 혜산의 ‘휘황한 빛’의 세계는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 속에서는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세계다. 그의 시 세계 앞에서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는 그 전통적인 ‘어둠’의 정신과 ‘음’(陰)적인 달빛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한국의 전통적인 ‘달빛’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그 나름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을 테이지만, 한편으로는 ‘양’(陽)적 세계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상에 언젠가 내릴 천상의 세계가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인에게 ‘휘황한 빛’의 세계이다. 박두진은 모든 어둠과 그림자로 상징되는 인간의 나약성과 무지와 어리석음을 완전히 태워 내는 절대 정화의 빛, 천국의 빛을 휘황하게 노래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시적 이력을 마감했다.
또 다른 특징
이 유고 시집은 고 박두진 선생의 미망인 이희성(동화작가) 씨가 엮은 것이다. 이 작업에는 선생의 문하생들이 적극 참여하여 유경환 씨가 서문을, 서강대학교 문과대학장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철희 교수가 발문을 맡았다. 본문 끝에는 책 수록 작품의 발표연대별 목록과, 작가 연보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