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에 열광하는 땅, 매일 검문소를 지나야 일터와 학교에 갈 수 있는 땅
베들레헴에서 보내는 르포르타주 평화 에세이!
1. 스물둘 대학생, 베들레헴을 가다
2013년 8월. 스물둘의 대학생 양기선은 베들레헴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베들레헴 땅에 간다. 메시아가 태어난 땅, 양 떼가 풀을 뜯는 한가로운 풍경을 상상했던 그곳은 자동차 매연과 쿠란을 외우는 소리, 히잡을 쓴 여성들로 북적북적한 전형적인 아랍 도시였다. 저자는 첫날부터 충격을 받고 베들레헴이 어떤 곳인지 하루하루 익혀 나간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탄생교회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지만 정말 그곳에서 예수가 태어났을까 의문도 들고, 예수가 태어났다는 장소에 정성들여 입 맞추는 순례객을 보며 쓸데없는 짓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경적을 울려 대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을 쏙 빼놓는 시장 골목, 대형 스프라이트 광고판과 히잡을 쓴 여성들이 공존하는 거리, 시도 때도 없이 공사가 이어져 도로를 통째로 걷어내고 송두리째 뽑힌 나무가 쓰러져 있어도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총총 걸어 다니는 곳. 베들레헴은 서안지구에 속한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놓인 곳이다. 어린이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일상적으로 돌을 던지고 어떤 학교는 군인들이 교문 바깥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곳.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되는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지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속에서 살아가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삶을 한국인 대학생이 바라본 르포 에세이이다.
2. ‘꽃보다 남자’와 강남스타일
외국인 학생은 저자를 포함해 단 두 사람인 베들레헴 대학교. 저자가 지나갈 때마다 여학생들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쳐다보듯 하다가 자기들끼리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대체로 수줍음이 많아 히잡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여성들과 달리 아랍 남성들은 계단에 걸터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낯선 이방인에게 거침없이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전교생 3,000명 중에 무슬림 비율이 71퍼센트, 여학생 비율이 76퍼센트인 베들레헴 대학교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인기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물 간 〈꽃보다 남자〉가 ‘보이즈 오버 플라워’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누리고 여학생들은 “민호, 민호”를 연발하며 수줍게 웃는다. 남학생들은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자연스럽다. 시장에서도 저자를 향해 “오빠, 강남스타일!”을 어색한 아랍어로 외쳐 부르곤 한다. 이스라엘과 늘 긴장 속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계속된다.
3. 일상 뒤의 일상
베들레헴이 있는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실권을 잡고 있다. 가자지구를 다스리는 하마스와 달리 파타당은 다소 온건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파타당이 학생회를 장악한 베들레헴 대학교에서는 파타당이 주요 행사를 조직하고 가끔은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 사람들이 와서 연설을 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사진기를 들이대면 수줍어하던 여학생들도 이날만큼은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구호를 외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친다.
베들레헴이 있는 서안지구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과 집을 빼앗기기도 하고 안보라는 이름으로 건설되는 분리장벽 안에 갇혀 살아간다. 비교적 높은 소득을 보장받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은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매일 새벽 4시부터 긴 줄을 서기도 한다(2012 서안지구 실업률 20.1%). 물론 이스라엘로 건너갈 수 있는 허가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 등록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2014년 1월 현재 542만 명이 넘으며 등록되지 않은 난민과 내부에서 추방된 난민까지 합하면 740만 명에 이른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3분의 2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쫓겨난 것이다.
한편 베들레헴(서안지구)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가자지구는 2014년에 다시 시작된 공습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2014년 9월 현재 가자지구 교전은 하마스와 이스라엘 측의 휴전 합의로 일단락되었지만 언제 교전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4. 이 책이 바라보는 시선
《베들레헴은 지금》에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거의 모든 쪽에 실려 있다.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바짝 다가서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눈빛과 손짓을 포착해 낸 저자의 신선한 시선이 담겨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먼저 이 책은 이팔 분쟁이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와 토착민 간의 분쟁이며, 종교 분쟁이 아니라 같은 땅을 놓고 벌어진 두 민족 간의 분쟁임을 명확히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선민과 이방 민족 간의 싸움이라는 그릇된 시오니즘을 넘어서서 성경과 지식인들의 만남을 통해 시오니즘에 대한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고 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구약의 약속을 신약적 맥락으로 끌어안으면서 두 민족 간의 용서, 평화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신뢰함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5.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입장
(1) 팔레스타인의 입장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2세기 이후 약 2,000년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왔다. 188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오면서 2,000년을 살아온 민족과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인들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었다. 1947년 유엔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 국가(56.5%)와 아랍 국가(42.9%)에 할당되었으나 1948년 1차 중동 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은 77%에 달하는 땅을 차지했고,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 나머지 23%의 땅(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요르단과 이집트로부터 빼앗았다. 450만 명이 넘는 아랍인을 자국으로 들일 수 없어 공식적으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병합하지 않을 뿐, 이스라엘은 안보와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이 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서안지구를 파고든 불법 유대인 정착촌, 주택 철거, 토지 몰수, 무재판 구금, 분리장벽 건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점령에 대한 저항으로 두 차례의 인티파다(민중 봉기)가 있었지만(1987, 2000) 이스라엘의 과잉 진압은 더 큰 분노를 일으켰다.
(2) 이스라엘의 입장
2,000년 동안 계속되다가 194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반유대주의 광풍으로 유대인들은 주권국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897년 테오도르 헤즐은 세계 시오니즘 기구(WZO)를 설립했고,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유대인 이주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아랍 토착민들의 유대인 마을 공격으로 유대인들은 이에 맞서 무장 단체를 조직했다. 아랍 국가들의 요구에 굴복해 백서를 발행하며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하던 영국군 또한 유대인의 처지를 악화시켰고, 이로 인해 나치즘이 득세할 무렵에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자유롭게 이주할 수 없었다. 영국은 이 문제를 1947년 유엔에 상정했고, 같은 해의 분할안에 따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건국 다음 날, 5개 아랍 국가들의 침공으로 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한다. 이듬해 승리를 거머쥔 이스라엘은 77%의 땅을 차지했고, 1967년의 3차 중동 전쟁 이후에는 남은 23%의 땅을 점령(이스라엘의 표현으로는 ‘통치administer’)해왔다. 3,000년 전에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이제야 ‘되찾은’ 이스라엘은 안보를 위협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셈이다.
(3) 시오니즘
시오니즘(Zionism)의 시온(Zion)은 예루살렘의 시온 산을 가리키며, 고대 이스라엘로의 귀환 혹은 이스라엘의 회복 운동을 가리킨다. 반유대주의로 인해 안정적인 주권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 운동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에는 시오니즘과 토라(모세오경)가 결합된 종교 이데올로기가 급속히 확산되었고, 기독교 진영에서도 성경과 현대 이스라엘을 연관 짓는 풍조가 빠르게 퍼졌다. 유대인의 귀환을 성경의 성취로 해석하여 이를 종말과 연관 짓는 ‘기독교 시오니즘’도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조건이 있는 언약이었다. 말씀을 떠나 불의를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책망하고 벌하신다는 말씀은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나안 정복을 현대 팔레스타인에 적용하는 것도 비성경적이며, 엄청난 힘으로 자행되는 국가 단위의 테러와 궁지에 몰린 약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폭력은 구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