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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

11,700

2004.10.28.
상세정보 / 232page
ISBN 978-89-365-0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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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고민하는 이들, 비전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바친다!
“삶의 현장을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비전 이야기”

《비전의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비전’이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지금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에서 주어진 ‘자신의 비전’에 대해 어떠한 추상적인 꿈만을 떠올렸다면, 저자는 진정한 비전이란 삶의 현장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멀리 떨어져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늘 현존하시는 하나님, 우리 각자가 1초 1초를 진심으로 살아갈 때 만나게 되는 그 하나님을 비전으로 붙잡을 때 개개인은 비로소 인생의 참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전은 꿈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 속에서 주어지는 고귀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비전의 사람》은 2000년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섬김과 봉사’라는 주제로 진행된 장신대 신학대학원 신앙사경회 주제설교에서 잉태된 책이다. 당시의 주제설교는 2001년 2월에 두 시간 분량의 테이프 5개에 담겨 메시지북 〈비전의 사람〉으로 출간되었으며, 출간 당시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메시지북 〈비전의 사람〉을 경험한 많은 독자들은 단행본 출간을 줄곧 요청해 왔다. 그런데 단행본 출간의 경우, 그것은 메시지북과는 다르게 엄연히 ‘글의 원고’이므로 다시 집필을 해야 함을 원칙으로 삼는 저자에게, 쉽사리 재집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홍성사 편집부는 저자에게 계속적으로 단행본 출간을 요청하였고 단행본 《비전의 사람》은 메시지북 〈비전의 사람〉의 원고를 다시 쓰는 리라이팅(rewriting)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다.

단행본 《비전의 사람》은 저자가 인세를 받지 않는 책이다. 저자가 인세를 받지 않는 대신에 그만큼 정가를 낮추고 양질의 책을 만들어 목회의 후배들과 신학도들, 그리고 독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재집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자

이재철
한국 교회의 대표적 설교자, 한국의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목회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49년 부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1974년 홍성통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회사와 개인 삶에 닥쳐온 위기를 계기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1985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와 목회 수련을 거쳐 198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개척 초기의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사임한 뒤 스위스 제네바한인교회에서 3년간 섬기면서 여러 해외 한인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2001년 귀국하여 개인 복음전도자로 말씀을 전하며 집필에 전념하던 중,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부름을 받아 2005년 7월 10일부터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회복의 신앙》, 《회복의 목회》, 《사랑의 초대》, 대담집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어령 공저)(이상 전자책도 출간), 《새신자반》, 《성숙자반》, 《사명자반》, 《인간의 일생》, 《비전의 사람》, 《내게 있는 것》, 《참으로 신실하게》, 《매듭짓기》(이상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출간),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로마서 설교집 <이재철 목사의 로마서>(전3권), 요한복음 설교집 <요한과 더불어>(전10권), 사도행전 설교집 <사도행전 속으로>(출간 중)가 있다. 이 책들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 진리를 끊임없이 삶과 관련지어 ‘지성과 신앙과 삶’의 조화를 꾀한다. 또한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하며 풀어내는 명료한 논리와 특유의 문체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새신자반》은 몽골어와 베트남어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와 《비전의 사람》은 중국어로 번역되어 현지 교회의 선교 사역에도 쓰이고 있다.

차례

1. 눈먼 사람 (행 9:1-9)

2. 비늘 벗은 사람 (행 9:10-19)

3. 성전의 사람 (요 4:19-24, 고전 3:16-17)

4. 비전의 사람 (행 19:8-22)

부록: 저자와의 대화

책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은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주어집니다. 바울이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가 골몰한 끝에 로마의 비전을 얻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사를 제쳐 놓고 심산유곡 기도원을 찾아 금식기도 하다가 얻은 것도 아닙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던 중, 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이란 하얀 백지 위에 하루하루 색종이로 모자이크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자이크를 직접 행하는 예술가 외엔 그 모자이크가 이루려는 최후의 그림이 어떤 구도나 내용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통해 이루시려는 당신의 궁극적 비전 역시 우리가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매일의 색종이를 충실히 붙여 가노라면, 어느 날 불현듯 완전한 형태의 하나님 비전을 보게 됩니다. 우리 나날의 삶은 그 비전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모자이크 판인 셈입니다. 바울은 20여 년 만에 그 모자이크 판에서 로마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전은 결코 삶과 괴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자는 누구보다 현재 주어진 삶의 현장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세주의자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기 위함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비전은 허공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인간을 위한 비전이고, 인간의 삶을 위한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현실과 현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나의 비전으로 삼을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비전을 읽을 도리도 없습니다.

서평

*갓피플
[김경미] 진짜 하나님의 비전은..

-대학 졸업후 진로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시험에 실패한 후, 깊은 절망중에 읽었던 책.

내가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해야만 내 비전을 이루는 것이라는 편협된 생각과 결과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던 나를 일깨워준 책이었습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여 ‘그 직업’을 가져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며 기도했던 것이 나의 욕심이었음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철저하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비전’을 먼저 묻기보다 내가 이루고싶은 나의 꿈을 하나님께 강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주시라고 기도하고, 이루어지지 않자 깊이 실망하며 많은시간을 슬럼프로 보냈던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앞에 성숙해 질수록,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내 신앙을 보기 원하지 않으심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진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도는 내 욕심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세요. 하나님의 비전을 내게 이루어주세요’라는 기도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느낍니다.

삶의 현장에 하루하루 충실하며 하나님의 비전이 지금 내 하루의 귀중한 삶속에서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가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내 삶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비전이 내 삶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날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별히 철저하게 깨졌던 부분은 바울과 요셉처럼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이재철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물이 있어야만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요셉은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보았고, 바울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의 결과를 보지 못한채 하나님곁으로 가게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둘 다 결과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셉과 바울처럼 되기까지 제 욕심, 제 바램들.. 깨어지고 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늘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항상 가득차 있고, ‘ 하나님앞에 나는 의인이다’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했던 나의 모습은 주님을 만나기 전 눈에 비늘이 씌워져 있던 사울과도 같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앞에 의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사울이지만, 주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하십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두렵기도 하고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드네요. 이전과 같이 ‘의인’인 양 계속 살았다면 언젠가는 하나님께 크게 혼났겠죠. 더불어 감사한답니다. 비늘벗은 사울처럼 저도 그런 삶을 결단할 수 있게 되어서요.
하나님앞에 진정으로 올곧은 자, 비전의 사람으로 사는 이 시대의 아름다운 청년이 되어야 겠습니다.

저자 인터뷰

○학우들이 질문함에 넣어 주셨던 용지들 중에서 골라 목사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자취생 이재철 목사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현재 제네바에서) 혼자 자취를 하신다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혼자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그러나 혼자 살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어려움은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첫째는 대화상대가 없음으로 인한 언어 구사능력의 퇴보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는, 토요일 아침 10시에 주일설교 원고작업을 시작하면 보통 밤 10시면 끝이 났습니다. 평균 12시간 정도 소요된 셈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열서너 시간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네바에 간 뒤 아침 10시에 시작된 설교 준비가 이튿날 새벽 1시나 되어 끝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2시, 3시, 4시까지 마구 연장되어 갔어요. 최고 18시간까지 걸린 거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몇 달 지난 다음에야, 혼자 사는 제게 대화 상대가 없어 언어 구사능력이 퇴보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필요한 언어를 동원하는 순발력이 떨어진 겁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문제는 극복이 되었습니다. 이제 대화 상대가 없어도 제 속에서 한국말이 퇴보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불현듯 가족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저는 눕기만 하면 그냥 잠이 드는 편인데, 가족이 사무칠 때는 꼬박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그런 경우가 예기치 않게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그건 아직 극복이 안 돼요. 그것이 현재 남아 있는 제일 큰 어려움입니다.

○목사님 글을 봐서는, 파자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밥을 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 상상이 안 가죠. 파자마를 입거나 앞치마를 두르고는 밥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학생들 중에는 학교에서 배운 신학이론과 교회현장에서 부딪쳐야 하는 마찰이나 관계로 인한 갖가지 상처들 때문에 신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는데요, 목사님께서는 뒤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후회하신 적은 없었습니까?

– 는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저를 만져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로 제 인생의 길을 바꾸지 않으면 또다시 인생을 허비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제가 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저의 약한 의지를 그런 식으로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교로 진로를 바꾼 것에 대해 후회는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불러 주셔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해 지금도 눈물겹도록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나이 들어 신학을 하면서, 그동안 익혔던 신앙과는 다른 신학을 접하면서 갈등하던 때가 잠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신대원에 입학한 게 1985년이었는데, 그때는 해마다 5월이면 광주항쟁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신학생들 역시 데모를 하며 화염병을 던지더군요.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구호 또한 일반 대학의 구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첫해에는 학생회가 초청한 외부강사가 학교마당에 운집한 시위대에게 선포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요지는 화염병 투척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에 갔을 때 내렸던 메뚜기재앙, 이와 파리 재앙 등이 다 무엇이겠느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메뚜기와 파리를 잡아오게 해서 파라오의 왕궁으로 던진 것 아니겠느냐, 그때의 메뚜기가 오늘날은 화염병이니까 신학생 여러분도 갈등 없이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권유와는 달리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계속 신학교를 다닐 가치가 있는지, 저는 잠시 심각하게 갈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얼마 후 저절로 해소되었습니다. 이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결국은 나 자신이 나와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 내 속에서 어떻게 통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깨달은 것이 첫째 이유였습니다. 둘째는, 만약 내가 하나님 앞에서 목사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아웃사이더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인사이더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신부였기에 종교개혁이 가능했지, 만약 루터가 장 칼뱅처럼 신부가 아니었던들 과연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의 물꼬가 트일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종교개혁의 첫 번째 주자로 사용하신 것은 그가 현직 신부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들로 인해 그 갈등은 제 속에서 통합되고 극복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수적 신앙풍토 속에서 자라난 저로서는 전혀 다른 신학이론이나 주장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굉장히 유익했고, 그래서 그런 기회가 있었음을 오히려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목회란 나와 다른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목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우리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중략)

○개신교회 목사님들 중에서 잘못된 모습을 보이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목사의 자질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는 데에 제일 필요한 덕목은 사람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되면 좋은 목사가 될 수 있고, 사람이 되면 좋은 정치가가 될 수 있고, 사람이 되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른 사람이 되지 않고 목사가 되면 목회현장 어디선가 반드시 문제가 터지겠지요. 성경말씀이 요구하는 바대로의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록 ‘저자와의 대화’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