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그 42일간의 숨 가쁜 기록이 담긴 현길언 작가의 실화소설!
“누구도 생명을 말하지 않았다!”
비정한 우리 사회의 알몸을 목도했던 그해 여름…
그리고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우리 시대의 ‘비정한 자화상’을 마주해야 할 이유!
기억하는가? 2007년 7월, 한여름 뙤약볕만큼이나 따갑고 맹렬했던 비정한 도시 사람들의 시선과 아우성을. 오랜 내전으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돌보러 떠난 한국인 봉사단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포위되어 42일간 공포에 떨며 포위돼 있었던 그해 여름, 피랍된 23인의 목숨을 향한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가혹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하다. 우리 모두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되돌아보기 전에,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가리며 저마다의 판단 기준으로 저울질하기 바쁘다.
이 소설은 8년 전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다루고 있으나, 비단 그 사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도리어 한층 심화된 이 사회의 부조리와 비정한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한편 세상 풍조와 여론에 휩쓸린 채 선한 양심으로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생명을 저당 잡혀 공포에 떨던 23인의 목숨 앞에 침묵했던 순간을. 이제, 끝내 ‘생명’을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비정한 자화상을 마주할 시간이다.
<일러두기>
1. 이 소설은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향하던 23명(남자 5명, 여자 18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되었던 사건을 토대로 허구를 가미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2. 본문의 2, 5장 ‘민유현의 일기’와 7장 ‘윤 선생의 일기’는 봉사단에 참여했던 유경식 강도사(당시)가 《본질과현상》 12호(2008년 여름)에 발표한 〈아프간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아픔〉이란 글을 바탕으로 저자의 상상력을 덧붙여 쓴 것임을 밝힙니다.
<줄거리>
강 여사의 생일을 맞아 모처럼 한자리에 둘러앉은 현선 가족, 돌연히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알리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게 된다. 본래 현선은 절친한 대학 선배 민유현과 함께 아프간 봉사에 동행하기로 했었으나 논문 번역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떠나지 못했다. 현선은 자신의 유익을 챙기느라 함께 봉사를 떠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유현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에 시달리는 한편, 시종 비난의 칼을 휘두르는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목도하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종교사회학자인 현선의 아버지는 여러 매체로부터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 대해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방송에 출현하여 한국 기독교의 선교 정책 등에 관해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한다. 현선은 그리스도인인 아버지조차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혼란을 느낀다. 생명에 대한 조금의 긍휼도 없이 그저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는 ‘비정한 도시 사람들’ 속의 현선과 세상으로부터 돌 맞을까 두려워 침묵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죽이며 살얼음판의 나날을 보내는 민유현과 윤 선생의 기록이 교차된다. 그 긴박한 상황 속에 배 목사와 상민 형제는 결국 살해되고 마는데…. 실제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한 42일간의 이야기가 긴박한 교차 서술로 입체 조명되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내었다.
말해지지 않은 것과 말해져야 할 것들
“한국 교회는 여전히 잠잠했다. 이번 사태로 세상이 교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였기에 섣불리 나설 용기가 없었다”(146면).
생사의 기로에 선 목숨 앞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생의 본질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나왔다. 시대의 균열을 메우는 작가 현길언의 실화소설이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봉사단원 피랍 사태를 토대로 재구성되었다. 인간의 주변적 진실을 추구하는 소설 쓰기에 35년을 몰두해 온 그가 무려 8년 전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든 까닭은 무엇일까. 세월이 흐를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그늘 속에 묻혀 있고, 말해져야 할 것들은 침묵의 영역 속에 갇혀 있는 이 현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당시 입 가진 자들은 누구나 ‘선교’라는 이름으로 내전 지역에 들어간 봉사단을 비난하며 한국 교회를 질타했다.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인은 여론을 한층 더 들끓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 기독교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기까지 했다. 내전으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를 떠난 이들의 선한 의도는 무연히 흩어져 버린 채 ‘부당한 출국’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 와중에 한국 교회와 개개인의 그리스도인은 세상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다. 세상이 휘두른 가혹한 비난의 말들은 한국 교회를 깨어나게 하는 매운 회초리가 되기는커녕 겁먹은 쥐를 비좁은 구멍으로 숨어들게 하는 비겁한 도리깨질에 불과했다. 이념을 사수하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무차별하게 희생하는 야만적 폭력성과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던 그해 여름의 비정한 도시 사람들. 이 소설은 여전히 비정하고 비겁한 우리를 향해 묻는다. ‘진리’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사회악과 시대의 부조리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라고.
사소한 목숨은 없다
“들꽃은 땅이나 나라를 가리지 않고 피는구나. 전쟁터에도 피고, 평화로운 마을에도 피는구나.
나는 신들린 사람처럼 들꽃을 뜯었다”(174면).
밤낮 없이 테러와 납치가 횡행하는 그 땅에도 이름 모를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황폐한 전쟁터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난 들꽃처럼 그곳에도 인정과 온기를 간직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온몸을 폭탄으로 무장한 잔악무도한 탈레반에게도 ‘목숨’은 똑같이 소중하고 존귀했다. 그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아프간 정부에 동지를 빼앗기고,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형을 잃은 불행한 자들이었으며, 폭격에 맞아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나간 약자에 불과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눠 보면 순수하고 투명한 영혼이 느껴졌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살피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고 떠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그곳에서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본다.
이 소설은 비난의 날을 세워 서로의 잘잘못을 물으며 책임 공방을 벌이는 비정한 도시 사람들의 그림자를 드리워 보이는 한편, 피랍자의 끼니와 세숫물을 챙기며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아프가니스탄 마을 사람들의 훈훈한 모습을 교차 전개함으로써 ‘인간’과 ‘생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을 되돌아보고 성찰케 한다.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한 알의 밀알로서 신앙을 지킨 배형규 목사와 박상민 형제(실제 이름 박성민)의 숭고한 희생 또한 아프가니스탄 땅을 향한 순전한 사랑을 증명한다. 그들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선포하려 했던 단 하나의 진리는 이 땅에 ‘사소한 목숨’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는 그렇게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거울 같은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IS 무장 단체의 관련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지금,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생명’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