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나연숙은 마흔의 나이에 비로소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되어서야 그녀는 자신의 아기를 잉태했다. 이 육아일기는 아들 ‘사도’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유아세례를 받을 때까지 띄운 편지를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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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나연숙은 마흔의 나이에 비로소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되어서야 그녀는 자신의 아기를 잉태했다. 이 육아일기는 아들 ‘사도’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유아세례를 받을 때까지 띄운 편지를 모은 것이다.
나연숙
1944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2년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으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 데뷔
1973년 〈사랑의 훈장〉으로 방송작가 데뷔
대표작 〈제3교실〉, 〈부부〉, 〈여자의 얼굴〉, 〈야, 곰례야〉, 〈달동네〉
1981년 예수님을 영접함
1982년 〈약속의 땅〉
1984년 〈보통 사람들〉, 〈고향〉, 〈은빛여울〉,
〈도시의 얼굴〉, 〈야망의 세월〉
책머리에
<사도일기>를 펴내면서
아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기까지 엄마의 간증 / 너와의 만남,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 아기 발이 보이나요? / 여자로 태어난 걸 네 이름으로 감사한다 / 햇빛은 어쩌면 저리도 눈이 부실까 / 우렁찬 첫 소리……. 어서 오너라, 나의 아가야 / 이제부터 우리는 세 식구란다 / 우리가 이렇게 꿈 같은 나날을 살 수 있는 건 / 사도야, 너는 자라서…… / 껴안는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란다 / 아가야, 엄마가 가장 힘든 일은 사랑을 감추는 일이란다 / 아, 가장 맑고 깨끗한 아가의 영혼
엄마가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들을 등에 업어본 날, 이 날을 어찌 보통 날이라 할 수 있겠니? 너를 업고 (폭 싸아) 응접실 창 밖의 하늘을 보여주었다.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하늘을 -본문 중에서
[독자의 글]
“<사도일기>를 읽고”
슬아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지금껏 세 권째의 육아일기를 써오면서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부끄러움.
말씀 중심이 아닌 그저 인간적인 욕심과 생각을 적어 내려가기만 했던 너의 일기가 이리도 부끄러움의 표징이 될 줄이야.
너를 가졌을 때 《믿음의 육아일기》를 미처 읽지 못했던 것이 더욱 후회스러움을 느끼게 한단다. 이 며칠 사이 《사도일기》를 읽으며 단숨에, 때론 눈물과 기도와 찬송으로 읽어 내렸어. 그 유명한 나연숙 아줌마가 쓰신 사도의 일기란다. 우선은 주변에 어쩜 그리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충격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단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실천하며, 기도와 간구로 격려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사도가 있었겠지. 물론 우리 주님의 모든 섭리와 인도가 있었음은 기본이고.
슬아 – 슬기롭고 아름답게 – 가 태어나기 3일 전부터 써온 육아일기가 이제 세 권째란다. 그동안 순간순간 너를 보고 느낀 감정들과 집안의 일들을 기록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너를 보고 느낀 감정들과 집안의 일들을 기록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믿음으로 쓴 <사도일기>를 보고 나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하나님을 모르는 네 할머니는 네가 태어난 7일째 되던 날 국과 밥을 떠놓고 삼신할미한테 빌고 계셨지. 서러웠던 엄마는 남몰래 슬아를 안고 기도할 수밖에는 없었단다. 이후로 백일이 지나고 네가 벌써 돌이 다 되어가는 이 즈음에 《사도일기》를 접하고 보니 얼마나 믿음의 환경이 중요한지, 엄마로서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슬아야, 엄마가 널 가져서 기도한 것이 있었지. 네가 하나님을 먼저 아는 아이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해 달라고. 사랑을 먼저 주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말이야. 이렇게 항상 사랑을 주는 아이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겠느냐고. 역시 슬아는 예쁜 모습과 귀여운 몸짓으로 모두를 사랑으로 대하고 있단다. 덕분에 모두들 슬아를 사랑하고 있고.
어쩌다 – 그래, 교회도 어쩌다 가지 – 교회에 가면 찬송소리에 슬아도 함께 찬양을 하는지 무척 떠들고 제법 의젓하게 말씀을 듣기도 한단다. 아마도 엄마가 널 가졌을 때 회사에서 성탄절 칸타타 연습을 열심히 한 것과 아름다운 찬양을 열심히 들려준 덕분인지 몰라.
엄마 아빠는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고 할머니와 하루종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어찌나 서글픈지. 사실 그 생활이 슬아에게 가장 미안하단다. 너의 모습이 단지 예쁘기만을, 귀엽고 사랑스럽기만을 바라지는 않기에 이리도 마음이 아픈지 몰라. 그 예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 사랑해요” 하고 기도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한단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Q.T.를 하고 네 일기를 쓰지.
‘오늘은’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어제는’으로 시작하는 슬아일기. 그래서 가끔은 서럽단다. 나중에 커서 슬아가 이 엄마를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슬아야, 요즈음에 엄마가 소원이 하나 생겼어. 아주 쑥스럽지만 무척이나 절실한 소원이야. 슬아는 나중에 사도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맞았으면 해. 그러려면 슬아도 그만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지. 그것은 정말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기도할게. 항상 정성스레 대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혹시나 네가 우상이 될까 걱정도 되기는 하지만 우리 서로 노력하자. 기도하자.
그래 슬아야,
이제 슬아의 기도로 할머니도 조금은 친절해지실 때가 있겠지. 우선은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자. 슬아, 사랑해요.
《사도일기》를 읽으며 참 많이도 생각하고 감격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못난 엄마를 둔 슬아(3월 10일이 돌)에게 너무도 미안하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습니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 버리면 할머니와 하루종일을 보내는 안타까운 현실이, 더구나 믿지 않는 할머니여서 더욱 답답해집니다.
한 달째 되던 날 기독교 방송에 엽서를 띄워 축하 음악을 선사받고 얼마나 기뻤던지요. 이 다음에 우리 슬아가 크면 몇 권이 될지는 모르지만 부끄럽기는 해도 꼬박꼬박 써놓은 일기를 선물로 주렵니다. 비록 매일매일 말씀은 함께 적지 못했을지라도 기도하는 마음을 써 놓은 글들이 엄마의 관심과 애정임을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좋은 글 주신 나연숙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믿음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아이를 가진 그 순간부터라도 노력한다면 요즈음처럼 이렇게 인간경시 풍조는 만연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이 널리 보급되기를 또한 기도 드립니다.
좋은 책을 펴내시는 ‘홍성사’ 여러분들 더욱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셔서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글/권영미(쿰회원, 쿰회보 94.03)
[저자의 글]
<사도일기>를 펴내면서
1981년.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를, 그리스도가 주신 새 생명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일로 세우게 하시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고 불이고 칼이고 씨앗이고 떡이고 빛인 것을 순간마다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약속의 땅’이라는 타이틀을 직접 주시고 방송극을 쓰게 하셨고 마흔의 나이에 한 아이의 어미가 되게 하는 축복도 허락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에 사도행전을 읽게 되었는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도를 펼쳐놓고 바울 선생님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 읽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이르러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바울 선생님의 위대한 신앙고백 앞에 통곡을 터뜨리고 태중의 아이 이름을 바울이라 짓고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쯤 남편이 은밀히 기도 가운데 지은 이름이 ‘사도’라 고백하여 바울 사도나 사도 바울이나 한 성령이 역사하신 이름이라 믿어져 그 날부터 아이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쓸모 없고 무가치하고 무력하기만 했던 한 여인이 사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니요! 주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이 아니시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아이를 하나님께 받고도 주께 온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숙련된 일꾼이 되지 못한 어미는 여전히 묵은 땅 그대로였지만 아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금년 열 살에 3학년짜리로 자라났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 땝니다.
아이가 부모를 떠나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지방에 여행할 일이 생겼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여전히 세속적인 목소리로 엄마는 여행 주의 사항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도야, 엄마는 널 어딜 보낼 때마다 왜 이렇게 걱정이 많지?” 하자 아이는
“나두 걱정이 있어.” 뜻밖의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무슨 걱정!”
“비행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그 얼마 전에 일어났던 국내선 비행기 사고를 연상한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걱정이 스쳤으나 짐짓 믿음이 굳센 어미가 되어서 “김 사도가 탄 비행기가 왜 사고가 나!”
필요 이상 권위주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내가 탄 비행기두 사고날 수 있구 나두 죽을 수 있어.”
아주 담담하고 신중한 대답이었습니다. 어미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내친 김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그래 죽으면 천국 가서 예수님 만날 텐데 억울한 거 있어?”
믿음 적은 아이 채근하듯 따져댔습니다.
“억울하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억울하지”에 강한 어조를 띄워 대답하는 거였습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오래 못 사는 게 억울하다는 답변을 예상하면서 어미는 더 족치듯 대들었습니다.
“뭐가 억울해!”
어미에 비해 아이는 더 담대하고 어른스런 표정으로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직 면류관도 못 키웠는데 억울하지”였습니다.
그 순간 어미 가슴을 탕 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아이의 신앙고백이었고 어미가 한번도 고백해 보지 못했던, 어미가 듣기에는 참 위대한 신앙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갑자기 다 자란 듯 보이고 내 염려로는 아이의 키를 한 자도 더 크게 할 수 없다는 진리의 말씀이 진리로 부딪혀 왔습니다.
그 후 아이에 대한 크고 작은 염려는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보냈던 사랑의 편지를 책으로 내는 데는 염려 이상의 두려움이 따릅니다. 부족하디 부족한 것의 미숙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 사이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기에 그 말씀만을 믿고 부족한 책을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사이사이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 말씀을 꼭 읽으시고 은혜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기왕이면 《사도일기》가 ‘홍성사’에서 나왔으면 기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그 무엇보다 기쁩니다. 부족한 것이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영광을 돌립니다.
-글/나연숙(저자, 쿰회보 9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