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비견되는 소설!
흥미 넘치는 소설로 읽는, 마르틴 루터의 경이로운 이야기.
종교개혁의 화신 마르틴 루터!
그러나 그 익숙한 이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
평생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그에게서 우리는 여섯 자녀를 사랑했던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상실하였다. 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진 루터를 알지 못하였다. 기도의 사람, 놀랄 만한 자제력을 가진 사람 루터에게서 감정적이고 야비하며, 욱 하는 격한 성격에다 외설적인 언사를 내뱉던, 우리와 다름없던 또 하나의 인간 루터를 우리는 보지 못하였다.
단지 종교개혁자로만 머물지 않았던 마르틴 루터!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렇게 격렬한 폭풍의 한복판으로 그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를 발견한다. 일개 인간으로서 무자비한 적들 앞에 그토록 당당하고 용감하였던 비밀을 우리는 비로소 이해한다.
이것이야말로 《소설 마르틴 루터》의 힘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를 개혁하는 진정한 개혁자로 우리들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왜 ‘마르틴 루터’를 소설로 읽어야 하나?
우리는 마르틴 루터에 대해 종교개혁의 화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익숙하다. 마르틴 루터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이해는 자칫 나무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을 보지 못한 채 단지 꽃만 보고 감탄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마르틴 루터가 위대한 종교개혁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인간 마르틴 루터의 진솔한 태도를 발견하는 일은 어쩌면 거대한 종교개혁의 그늘에 가려진 뿌리요, 줄기요, 잎이기도 하다.
그래서이다. ‘개혁’이라는 단어조차 개혁되어야 할 오늘의 한국 교회는 지금《소설 마르틴 루터》를 읽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진정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소설 마르틴 루터》에서 비로소 여섯 자녀를 사랑한 다정했던 아버지 루터의 얼굴을 발견하며, 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진 루터를 만난다. 그가 기도의 사람, 놀랄 만한 자제력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감정적이고 때로는 야비하며, 욱 하는 격한 성격에다 외설적인 언사조차 거침없이 내뱉던, 생소하기 짝이 없는 또 하나의 인간 루터를 만난다.
더욱이 종교개혁자 이전에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우리와 닮아서 더 가까운 마르틴 루터에게 이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렇게 격렬한 폭풍의 한복판으로 그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설 마르틴 루터》가 갖는 힘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진정한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얼굴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