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로서 탁월한 임상 및 강의 실력을 갖추고도 보장된 부와 미래를 버리고
척박했던 이 땅에 와서, 자신을 파송한 선교회의 급여만을 받으며 일터에서
온몸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한 인간 드라마!
한국에 와서 두 아이를 입양하고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치게 된 사연, 동서양의 전혀 다른 문화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이에 얽힌 유쾌한 에피소드, 가난한 무의촌 환자들과 썩은 냄새가 나는 구강암 환자들을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농담을 하고 웃겨 가며 신나게 치료하던 모습, 철저한 수련과정으로 전문인 양성에 힘쓰고 진료 현장에 필요한 장비뿐 아니라 북한에 이동식 치과 차량을 개발해 보급했던 과정 등 파란 눈의 치과의사 닥터 뉴스마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 한국 사랑이 펼쳐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쁜 소식을 나누는 일입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치의신보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3만여 종이나 되는 생업에 종사하는 직업 중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업을 가진 사람 다음으로 치과의사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2006년 9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신건강 담당인 호세 베르톨로테 박사 역시 “치과의사, 수의사들이 특히 자살의 위험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으며, 최근 미국 국립직업안전 보건연구소 소속 로버트 파크 박사는 연구를 통해 치과의사의 경우 타 직종에 비해 65세 이전에 발생하는 ‘조로성 치매’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소득과 칼퇴근이 보장되는 안정적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낯설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비단 자살은 치과의사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라면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할 의사가 스스로 생명을 끊고 또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날 자신의 일터에서 진정으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1961년 가난했던 한국에 와서 25년간 광주기독병원 치과에서 일하면서 고통 받는 한국인들과 함께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끊임없이 봉사의 삶을 살았던 닥터 뉴스마.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힘든 일보다는 기쁜 일을 더 많이 나누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기쁜 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했던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그에 대해 “언제 어느 곳이든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가 되게 만드는 사람, 언제나 즐겁고 기쁘게 일하는 사람, 동시에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완벽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영혼까지 웃게 하라》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상실해 버린 ‘기쁨과 웃음’이라는 가치에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던 한 사람의 자서전으로, 그는 치통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입뿐 아니라 영혼까지 미소 짓게 했다. 과연 그의 삶은 어떠했으며 고난 중에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최고의 의술로 한국 치과 발전의 초석을 닦다!
그의 삶은 크게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의사로서의 삶이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당시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인재들이 광주기독병원과 학술대회로 모여들었는데, 이에 대해 치과의료선교회 양유식 회장은 “그는 특히 가르치는 일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난 사람으로 당시 서울대 교수들에게 열 번을 들어도 못 알아듣는 내용을 한 번에 이해시켜 쉬우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명강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고, 이는 아무리 어려운 미적분도 간단한 산술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탁월한 임상 실력으로 제자들의 손을 친히 잡고 실습을 시켜 주며 그들에게 임상의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 또한 처음 부임했을 당시 열악했던 상황에서도 그의 시술은 질적으로 뛰어나 그가 해 준 의치는 오랜 세월 동안 건재했다.
단 한 번의 강의나 진료도 대충 넘긴 적 없으며 철저한 수련과정으로 전문인 양성에 힘썼고, 호남지방 최초로 조선대학교 치과대학과 서원전문대학 치위생과 개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진료 현장에 필요한 장비뿐 아니라 북한에 이동식 치과 차량을 개발해 보급한 과학자이기도 하며, 미국에서 휴가를 돌아올 때면 외국의 최신 치과 기술과 장비를 들여와 그야말로 한국 치과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밤늦도록 연구와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불태웠던 그는, 그럼에도 치과의사가 된 이유에 대해 그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과 비전, 부모님에 의한 강요 혹은 부와 안정된 미래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요, 자신도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주어진 일터에서 부단히 능력을 개발하고 기회를 창출해 사랑을 전하는 일이었다.
‘한국 치과의료선교의 아버지’ 닥터 뉴스마의 선교의 힘!
그의 삶에 있어 두 번째 면모는 낮은 자리에서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한 선교사로서의 모습이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부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풍요로운 미국을 떠나 척박했던 이 땅에 와서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쳤다. 또한 초라하고 남루한 무의촌 환자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치료해 주었으며, 썩은 냄새가 나는 구강암 환자들을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농담을 하고 웃겨가며 신나게 치료했다. 한국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도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해 자신을 위한 큰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으나 계속 광주에 남아 제자들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월급이나 그 밖의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을 파송한 선교회에서 보내오는 급여만을 받았다.
그런 그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난 뒤 일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실패한 선교사라 부르며 그를 선교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교회를 세우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느냐가 선교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많은 치과의사들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치과의료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해외로 뻗어나가 인술과 복음을 나누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말로는 제자를 삼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영적 지배와 다름없고 양적 증대만을 중요시하며 결국 단발적인 선교에서 그치고 마는 일부 한국 교회의 선교 모습과 비교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오직 말이 아닌 솔선수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함으로써 현지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 냈다는 점, 이것이 바로 닥터 뉴스마가 보여 준 선교였다.
기쁨과 웃음을 상실한 이 시대에 전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메시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특성 한 가지는 닥터 뉴스마만의 문체와 유머이다. 다른 사람들은 최고로 알아주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업적을 잘 드러내지 않은 점, 인생의 고비고비와 질곡 앞에 자신이 겪었던 역경과 고민,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쏟아 놓지 않은 점, 대신 사건과 사실 위주의 서술 방식 등으로 이 책은 다른 자서전처럼 절절하진 않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하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만의 겸손함과 진실함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그가 한국 문화를 접하며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과,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온갖 역경을 즐기며 헤쳐 나가려 했던 모습들이 더하여 잔잔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에게도 고난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늘 가까이 있었다. 선교사의 길을 택하면서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아픔과 그리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볼 것을 예감하며 아버지와 작별했던 사연, 신뢰받는 직원이 환자들의 진찰비를 착복하고 부자 환자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려 하지 않았으며 술 취한 거지는 당장 공짜로 치료해 달라고 큰 소리로 떼를 썼던 상황, 김치와 한국어 등 전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체화해 가는 과정, 한국에서의 헌신으로 한쪽 귀가 멀고 손가락이 마디마디 갈라졌으며 결국 간경화증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기까지. 또한 ‘머리말’에서 밝힌 바 솔직함을 넘어 순수함 혹은 용감함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고백처럼, 사실 그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생의 곳곳에서 순간마다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순종하고, 그 상황을 의지적으로 즐기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치과의사도, 선교사도 아닌 치과의료선교사였다. 그의 삶에 있어 직업과 봉사는 결코 별개의 개념이 될 수 없었다. 《영혼까지 웃게 하라》는 하나님이 한 인간을 택하여 훈련시키고 선교 현장으로 보낼 때, 그리고 보냄 받은 종이 주님의 뜻에 충성하며 사랑을 전할 때 그 땅에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밝히 보여 주는 등불이며, 오늘을 사는 메마른 영혼들에게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선사하는 청량음료가 되어 줄 것이다.
* 동영상 제작: 치과의료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