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회에 본회퍼가 있다면
한국 교회에는 주기철이 있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담은 전기 《예수의 양穌羊 주기철》이 출간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검속되어 감옥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사실 일본인들에게만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다. 일제의 탄압 앞에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무릎을 꿇으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기철을 목사직에서 파면했다(1939년 12월 19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를 동료 목사들이 파면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일본이 물러가고 한국 교회를 기념하는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주기철 목사 복권에 관해서는 침묵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2006년) 봄, 평양노회에서는 해묵은 죄악을 하나님과 한국 교회 앞에 진실로 참회하고, 주기철 목사 면직 결의를 취소, 주 목사를 순교자 명부에 올리는 뜻 깊은 일을 수행했다. 이와 함께 주기철 목사의 신앙의 참뜻을 계승하려는 첫 노력으로 그의 일생을 담은 전기 《예수의 양穌羊 주기철》을 기획하게 되었다. 주기철과 관련하여 여러 책이 나와 있지만, 그간의 전기가 너무 어렵거나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성이 떨어지는 점 등을 고려해 평신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으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전기를 내놓기 위해서였다.
평양노회의 이러한 노력에 동력이 되어 준 저자 김인수 교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서 오랫동안 한국 교회사를 연구해 왔으며, 특히 “주기철 목사의 순교가 이 시대의 모든 교역자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음을 신학도들에게 오랫동안 역설해 온 장본인이다. 김인수 교수는 “주기철 목사는 혼란한 세대에 진리를 수호하는 데는 그 어떤 타협도, 회유도, 탄압도, 박해도, 고문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과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독일의 천재 신학자 본회퍼 목사가 독일의 나치 정부하에서 고난을 당하고 2년여의 옥살이 끝에 순교하여 세계 교회의 사표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데 비해, 같은 시대에 일제의 만행 앞에서 끝내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예수의 양으로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그리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평생을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살아온 주기철목사의 삶은 안일한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우리 삶에 강한 도전을 준다.
* 객관적 정보를 우선으로 하는 연구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한자어나 고어는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 썼다.
* 주기철 목사님의 목사직 복권과 관련한 서술이 수록되어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평양노회는 2006년 4월 18일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을 복권했다.)
* 주기철 목사님이 남기신 설교와 글들을 직접 접할 수 있다(부록 참고).
소양 주기철(穌羊 朱基撤, 1897-1944) 아명은 기복(基福). 경남 창원군 웅읍(웅천)면 북부리에서 아버지 주현성과 어머니 조재선의 넷째 아들로 출생. 개통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5년 11월 세례를 받았으며, 1917년 가을 안갑수와 결혼했다. 1920년 웅천읍교회에 초청된 김익두 목사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뒤 장로회신학교에 입학(1922년), 1925년 12월 목사안수를 받았다. 신학교 2학년이던 1923년 봄 양산읍교회 조사(助事: 지금의 전도사)를 시작으로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했다. 아내 안갑수와 사별한 뒤 1935년 11월 오정모와 재혼했다.
주기철은 일제 치하에서 네 차례 검속을 당했는데, 그 시작은 1938년 2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일어난 ‘김일선 기념식수 훼손사건’으로 추정된다. 이후 같은 해 8월 ‘농우회사건’으로 의성 경찰서에 2차 검속되었고, 1939년 10월에는 특별한 혐의 없이 평양 경찰서에 3차 검속되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자 검거 시기인 1940년 9월 4차 검속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감으로 이송한 며칠 뒤인 1944년 4월 21일 47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63년 건국공로훈장(단장)을 추서했으며, 주기철을 파면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2006년 4월 그의 목사직을 복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