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장 목사의 기독청년운동 이야기, 그 결정판
한국 교회에 도사린 지도력 위기!
“더 이상 ‘나이 든 아이’로 살지 말자”
《왜 나는 예수를 믿는가》(2013, 홍성사) 이후 저자는 《왜 나는 예수를 닮아가는가》를 꼭 쓰기 원했다. 예수를 전한 제자들을 나이 들어 만나면서 미숙한 상태에 머문 사람, 놀랍게 성숙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성장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라지 않는가?’ 또한 지도자들의 언행에서 ‘나이 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지도력에 위기가 도사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연륜과 성숙은 왜 나란히 가지 않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성숙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성숙의 과정을 거쳐 서른 살에 사역을 시작하셨다. 삶과 믿음의 본이 되는 예수를 따르는 이라면 성숙을 향해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왜 나는 예수를 닮아가는가》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됨의 길을 말한다.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되는 성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하신 근본적인 사람됨의 길이다. 그 길은 신앙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의 삶에 가장 잘 구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바로 예수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기, 위기, 위기
한국 교회에 리더십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저자는 국내 신학대학원 편목 코스를 밟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신학 교육이 충격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의 인격과 교양 부족 또한 심각하다. 매너는 세련된 사람이 많으나 성경을 깊이 모른다. 신학 지식, 인문학적 사고력, 일반교양을 갖춘 목회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신앙공동체에 사랑이 식어 간다. 유튜브나 게임을 할 시간은 있어도 밥을 나누며 대화를 할 시간은 없다. 립서비스 수준의 교제에 인간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청년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지만 커가면서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줄 안다. 그러나 미숙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미숙한 사람은 스스로 서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한다. 저자는 성숙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분명치 않은 회심, 가시나무 같은 속사람, 세상 사랑이다. 복음의 씨앗이 싹트기도 전에 교회 문화에 익숙해지면 이를 거듭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말씀을 받는 마음 상태가 가시덤불이면, 씨는 싹트지 못한다.
솔직한 자기고백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약점과 어리석음으로 겪은 사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지각한 학생에게 “너 같은 놈 때문에 민족이 망해!”라며 수첩을 집어던진 사건, 영국 유학 시절 도색잡지를 샀다가 성령의 책망을 느끼고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일, 믿고 인감까지 맡긴 선임하사가 공금을 들고 사라진 사건 등 미성숙하여 일어난 사건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못 되니 그냥 불쌍히 여겨 달라고. “미숙의 은사”를 받았다고 농담을 하는 저자는 이 나이가 되도록 미숙한 자신을 보며 자책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한편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며 갸륵한 마음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성숙한 사람은
이 책은 성숙한 사람의 본으로 예수님을 제시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갔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졌다고 증언한다. 성숙한 사람은 몸을 돌본다. 육체적으로 자랄 뿐 아니라 방종에 빠지지 않는다. 성적 일탈을 추구하지 않으며, 헌신한다는 미명하에 자기 몸을 “갈아 넣지” 않고, 청지기로서 몸을 관리한다.
성숙한 사람은 영성이 자란다. 하루의 영성은 아침에 달렸고, 그 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인간이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것은 ‘인정’과 ‘사랑’이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행복한 하루를 산다. 성숙한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되비춘다.
성숙한 사람은 관계가 깊어진다. 하나님과 더 깊은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고,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을 키운다. 사람은 밥을 함께 먹으며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람은 성장한다. 사랑은 실수하며 닦아나가는 기술이자 예술이다. 계산적으로, 숨겨진 계획을 두고 사람을 만나면 관계는 왜곡된다.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부탁
전쟁을 겪고, 산업화에 성공한 전쟁 세대, 산업화 세대인 저자는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청년들을 보며 당황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자녀들은, 손주들은 우리 세대를 ‘꼰대’라 부른다며 후배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긴다. ‘살벌한 경쟁 교육’, ‘모든 걸 순위 매기는 서열’, ‘갈라치기하는 계층 사회’, ‘적자생존의 세상’의 현실을 용서해 달라고, 이제는 이미 늙어 바로잡을 시간도 능력도 없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성서한국을 만들어 달라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말을 남긴다. 축복하며 기도하고 응원한다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한 건 잘 지켜 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고 부탁하고 싶다고……. 기독청년운동의 어른이자 대부 격인 저자의 절절한 당부의 말이 책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은 어떤 식으로든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예수를 닮아가는가》를 읽는 젊은 세대 가운데 그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