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도, 배경도, 학벌도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운명에 맞서 정도正道를 따라 질주한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삶의 기록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는 게 어렵고 힘겨워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딛고 일어설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다섯 가지 삶의 철학과 진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실히 보여 준다. 또한 검사 시절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국내 최초 컴퓨터 해커 사건 수사를 담당하던 현장의 뒷이야기와, 국무총리로서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으며 흘렸던 눈물,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과 구속을 지켜봐야 했던 고뇌를 진솔하게 담았다.
‘88만원 세대’, ‘7포 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처지와 현실을 비관적으로 빗댄 여러 신조어들이 양산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만큼 각박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기가 힘겨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기성세대로서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 데 대한 고뇌와 책임감으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열두 남매 중 열 번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어린 시절 힘겹게 학교를 다녀야 했다. 중학교 때는 세 친구의 집을 옮겨 다니며 지내다 연탄가스를 마셔 객사할 뻔하기도 했다. 사범학교에 들어가서는 낮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 법대생으로 공부하며 주경야독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처지를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정진한 결과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책에는 당시의 애환이 어떠했는지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8, 9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의 생생한 비화
그가 첫발을 들여놓은 세상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초임검사 발령을 받으면서부터 법조계의 편견과 불합리의 벽에 맞닥뜨려야 했던 것. 하지만 상황이나 주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결과, 영등포 일대 대규모 소매치기단을 검거하게 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룹 ‘사랑과 평화’의 멤버 이남이 씨를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시키면서 그와 맺은 인연, 국민들에게 크게 사랑받았던 곡 <울고 싶어라>가 만들어진 배경,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일하며 대검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일,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을 어떻게 맡게 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그와 나눈 대화들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 사건’이라 불린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을 담당하면서는 장영자라는 여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사건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돌아본다. ‘해커’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 해커 사건을 맡아 해결하기도 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장 시절에는 대낮에 검사들이 술자리를 갖는 관행을 뿌리뽑기도 했다.
이후 검사생활 30년 만에 사표를 쓴 이유와 불과 3개월 만에 변호사 생활을 그만둔 까닭, 2012년 뜻하지 않게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을 맡아 사심 없는 공천, 공정한 공천을 소신껏 밀어붙여 결국 패색이 짙던 당시 상황을 역전시킨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한줌 바람도 제 갈 길을 따라 불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책의 후반부에는 제42대 국무총리로서 여러 일들을 수행하며 그가 지켜 나가려 한 ‘국무총리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타를 제시한다. 특별히 세월호 참사가 난 직후 어떻게 현장을 수습하고 구조 작업을 벌였는지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의 애타는 마음과 긴박한 순간들이 눈물 자국처럼 담겨 있다.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 당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게 된 연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변론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고사한 이유, 그때 한 시간가량 나누었던 대화 내용과 현재의 심경도 진솔히 담아 냈다.
“길만 잃지 않는다면 어떤 거센 바람도 이겨 낼 수 있고 결국은 운명과의 경주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삶을 통해 체험했다”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 이 책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길을 잃지 않고 제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겨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