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고개를 든 순간, 우린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쳤고, 순간 온 우주가 멈춰 버린 듯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우주만큼이나 검고 깊었다. 그 속엔 사연 많은 별자리만큼이나 많은 추억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추억이 유성처럼 내 옆을 스쳐 지나가고, 그녀의 눈동자는 블랙홀이 되어 모든 빛과 함께 나를 빨아들였다.” _본문에서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너인데, 나와 절친인 너인데,
널 보면, 가슴이 뛴다…
겨울밤보다 시리고 별보다 반짝이는, 한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
나 어떡해? 저 어떡해야 하죠?
고등학생 천희는 교회 전도사님을 찾아가 연애 상담을 요청한다. 자기 친구의 여자친구를 좋아하게 된 까닭. 생각도 표현도 거친 천희는 소위 ‘일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술담배 모두 끊고 교회생활에 전념하던 중 이 같은 고민에 맞닥뜨린 것.
전도사 성진은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자신이 과거에 쓴 일기를 정리한 뒤 그것을 천희에게 건넨다. 그 일기에는 성진이 영국 유학 시절 만난 이성 친구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었다.
너, 뭔데?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데?
영국의 아름다운 시골 난트위치, 그곳에 위치한 일림 언어학교를 배경으로 별보다 반짝이고 겨울밤보다 시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싱그러운 6월 어느 날, 공부에 매진하며 유학 생활을 하던 성진은 갈색 머리, 갈색 눈에 동양적 분위기를 내는 프랑스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 잠시 영국에 공부하러 온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어쩔 땐 한없이 당당한 그녀 모습에 차츰 가슴이 설렌다. 성진은 아만다가 프랑스에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꾸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친구 있으면 어때?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뭐야, 헛소리하지 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란 말이야. 사랑이 쉽게 바뀌면, 그게 사랑이냐?”
그냥 저 보고 미쳤다고 해주세요… 정신 차리라고 말해 주세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는 친구의 말은 성진의 머릿속에 남아 반복 재생되고… 그 이유는 하나란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느낄 수 있는 설렘 혹은 한때의 관심일 거라 부인하고 또 부인해 봐도 말이다. 신학생으로서 누군가 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죄책감, 그리고 유학생활 중의 공부에 대한 압박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럼에도 그녀가 자꾸만 좋아지는 마음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을 겪게 되고,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하며 좌절에 빠지게 된다. 겨우 마음을 정리했다가도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그녀. 결국 성진은 고백을 결심한다.
그녀는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음을 고백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었다.
“아만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난 잠시 망설였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음… 너, 남자친구랑 결혼할 생각으로 만나고 있어?” “응.”
그녀의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널 정말 좋아했어… 이젠
한 남학생 마음에 짝사랑이 움트기 시작하고 고백으로 이어지기까지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은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첫사랑, 그것도 짝사랑을 겪으며 일어나는 내적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상에서 성진과 아만다가 만들어 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 성진이 아만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여러 재미있는 이벤트를 마련하고, 뜻하지 않은 주변 일들로 그것이 연거푸 물거품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들, 결국 계획한 고백이 의도치 않은 내용으로 바뀌고 마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도록 해준다. 꽃다운 젊음을 패기롭게 즐기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인지, 그러지 않는 것이 과연 바보 같은 건지, 땅에 떨어져 버린 순결과 절제의 가치란 뭔지, 자신이 사랑이라 여기는 것이 진짜 사랑인지….
짝사랑으로 심한 방황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이들, 고백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의 고민을 한결 가볍게 해주고, 더 나아가 자유함에까지 이르도록 도와준다. 성진의 고백을 들은 아만다는 과연 성진과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사람 친구’는 영원히 가능할까?
저자
박정호
2007년 전주대학교 경배와찬양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신학 디플로마Diploma 코스를 졸업했다.
집안 사정으로 어릴 적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남달리 자기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깊이 고민했다. 2011년부터 2년 반 동안 평내제일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했고, 현재는 가락시장에서 하루 하루 열심히 땀흘려 일하면서, 잠실 남포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아가는 것이 삶의 내적 목표다. 외적 목표는 카페를 만들어 청년들과 문화적으로 교류하고, 글과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더욱 풍성하게 나누는 것이다.
■ 내 안에서 누군가 말하는 듯했다.
‘텔레비전을 한 시간을 보면, 정말 한 시간만 사용한 걸까? 텔레비전에서 봤던 잔상을 지우고 집중하는 데만도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눈의 피로도 쌓이는 것을 생각해 보면, 텔레비전 한 시간 보는 것이 실은 세 시간을 사용하는 것일 수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너가 지금 아만다를 한 번 보는 건 결코 한 번이 아닌 거야.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올라서 내일은 더 생각날 거고, 그다음 날은 더 생각날 거고, 결국 시험을 망치고 아만다도 떠나고, 넌 무엇 하나 잡지 못한 바보가 될 거야.’
‘알아, 나도 안다고. 넌 어쩌면 그렇게 냉정하니? 때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거야. 왜 한 순간도 마음을 놔주질 않아? 누가 옳고 그른 거 모른대? 넌 로보트야? 그렇게 평생 살아봐라. 행복이 뭔지나 알겠냐?’ _51쪽■ 겨우 마음을 정리했는데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분명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는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그냥 지켜보고 계신데 내가 너무 확대 해석하면서 하나님 뜻을 거론하는 것인가? 다시 마음 한 구석에 그녀를 향한 마음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꼭 이런 마음은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안 돼! _60쪽■ 아침 수업이 거의 끝나고 점심이 다 될 무렵, 마가렛 선생님께서 자신이 가져온 초콜릿을 나눠 주셨다. 그것은 카라멜, 토피toffee, 딸기, 아몬드, 다크초콜릿 등 여러 가지 맛의 초콜릿 상자였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차례대로 물었다.
“무슨 맛 줄까?”
“전 다크 주세요.”
재상이가 말했다.
“전 토피 주세요”, “전 딸기요” 여기저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난 식욕이 없던 터라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사토시, 뭘 원해?”
“전 아몬드요.”
“성진, 뭘 원해?”
“아만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_65쪽
■ 문득 나마저도 내 편이 아닌 듯했다. 왜 난 한 순간도 나일 수 없을까? 그냥 이대로 참아 낸다면, 난 정말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무뎌지겠지…. 그렇게 마음이 식으면, 난 아무런 후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새 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고백은 해보겠습니다. 대신 결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마음이 괜찮아졌다 해도 후회라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니까요. 어차피 내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안 될 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고백해 볼게요.’ _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