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와 90일간의 여행어느 날 눈앞에 펼쳐진 길은 남들이 가는 큰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길은 좁은 길이었다. 마음속에 그렸던 모습과 아이의 자람이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고, 불편한 시선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 길목에서 가족은 잠시 낯선 땅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서로의 보폭에 맞춰 걷고 싶었다.
겸이는 유독 순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듬뿍 사랑받으며 큰 보챔 없이 자라나 엄마의 힘을 덜어 주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조금 달라졌다. 극심한 분리불안과 예민함으로 엄마를 자주 당황시켰고, 과민한 행동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서 집중받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자라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거라 엄마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폐 경향적 소견이 보인다는 의사의 진단은 예상치 못한 막막한 현실로 모든 기대를 돌려놓았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
이 책은 아이가 발달 장애를 겪게 된 후, 가족이 함께 회복되고 성숙해 가는 과정을 여행이라는 시간을 통해 담았다. 그 여행은 마치 가족이 쉬어 갈 때마다 꺼내어 볼 선물을 찾아 떠난 아주 특별한 소풍과도 같다.
유럽에서 시작되는 가족의 회복과 성장 여행기“제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라는 의사의 조언에 아빠와 엄마는 아이에게 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네덜란드, 영국을 90일간 돌아다니며 아이의 웃음소리가 커졌고,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에 따뜻함이 더해졌다. 아이는 에펠탑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저기 또 가까? 에피타, 에피타’라는 서툰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분수가 있는 곳이면 분수 사랑에 흠뻑 빠졌다. 작은 일에도 무서워하고 숨기만 했던 아이가 회전목마를 타고, 백조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커다란 하얀 오리를 백조로 착각하긴 했지만, 빵 조각을 뚝뚝 뜯어 던져 주면 따라오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들이 가족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은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진정한 회복을 경험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갖고 있던 죄책감의 짐을 내려놓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들에 대한 소망을 얻었다. 그렇게 여행의 하루하루가 지나며 부모와 아이는 서로에게 더 다가서고 자라 가며,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