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에 이르는 격변기,
계몽운동가, 학자이자 교육가, 외교관이었던 신흥우에 대한 기록
인간 신흥우의 생애와 업적
서재필로부터 민주주의 사상을 배우고, 아펜젤러 선교사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가 된 신흥우. 그는 1920년부터 1934년까지, 1954년부터 1957년까지 거의 20년간 한국 YMCA 총무로 일하였고, 일본 YMCA로부터 한국 YMCA의 자주권을 확립한 인물이다. 학생회 회장으로 일하던 당시 정부 전복을 꾀한다는 주장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03년 봄부터 1911년까지 미국 남가주대학(Southern California)에서 공부한 그는 1911년 6월초 배재학당 교감으로 취임하여 이듬해 1월에 당장(堂長)에 임명되었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교육, 민주주의 교육을 이끌었고, 당시 국민의 85퍼센트를 차지하던 농촌과 농촌 청소년들을 각성시켜야 온 나라가 잘산다는 신념으로 농촌 사업 3대 강령을 천명하여 농촌복지, 농촌발전에도 공헌을 하였다. 창씨개념의 오점을 남기기도 한 그는 초교파 연합운동과 한국 기독교 토착화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이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인간 신흥우》는 1971년에 범우사에서 나온 것을 전택부 선생 탄생 100주기에 맞추어 내용 교열과 본문 및 표지 조판을 거쳐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