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다. 실험이다.”
130년 전, 예수를 만난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이자
김교신, 함석헌의 스승
우치무라 간조의 전도 정신 선언문, 전도자의 필독서
“똑같은 전도라 하더라도 여기에 임하는 사람의 정신은 결코 같지 않다.
가장 질 낮은 정신이 있고, 가장 고상한 정신이 있다.”
_본문 중에서
일본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사회평론가, 저술가였던 우치무라 간조는 일본의 쇠퇴하는 기독교 현실을 지켜보며 ⟪전도의 정신⟫(원제: 伝道の精神, 초판 1894년)을 펴냈다. 130년 전 그가 전도자들을 향해 던진 자기 쇄신의 목소리는 지금도 전혀 낡지 않았다. 그는 전도의 6가지 유형을 통해 전도자가 궁극적으로 담아내야 할 정신은 무엇인지 답한다.
먼저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전도를 선택할 때의 오류를 말하고 있다. 전도자가 몸담은 교회(사회)와 사람들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 목사가 전도자가 되길 바라며 돈을 요구하는 전도자는 신뢰하지 않는다. 저자는 현실적인 어조로 “전도의 어려움과 실패는 대부분 돈 문제에서 온다”고 말한다. 전도자의 양심은 교회의 악습을 고치고자 하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직업 근성은 생계를 위한 선택을 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내일부터 굶는다. 그는 둘 중 한쪽과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한다. 생계가 목적이 될 때 교회와 전도자는 서로의 이상이 맞지 않음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어 ‘명예(공명심)’, ‘교회’, ‘나라’를 위한 목적으로 하는 전도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 목적들이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해서 큰 결과를 이루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단언컨대 이 목적들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경계하는 전도의 모습을 단순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전도의 길에서 반드시 이 문제들과 마주하며 자신에게 질문하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우치무라 간조가 말하는 진정한 전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통과된 자들이 ‘사람’을 위한 전도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전도라 하였다. 그는 로온폴 공 이야기에 빗대었다. 오직 하늘의 큰 뜻만을 향해 나아가던 젊은 시절 자비와 온유함이 결핍되어 지나쳐 버린 한센병 환자를 환란과 괴로움으로 부드러워진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나 빵 한쪽과 냉수 한 잔을 건네주었던 짧은 소설을 통해 전도의 참뜻을 보여 준다.
이상적인 전도자
우치무라 간조는 전도자는 물론 모든 기독인이 갖추어야 할 ‘전도의 정신’ 외에 전도자의 ‘신체 조건과 기질’, ‘지식’, ‘경험’을 논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은 필요 없다는 열성적인 종교가들의 생각을 경계한다. 전도자는 우주 만물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나타내는 자이므로 그가 몰라도 되는 일은 없다. 전도자가 알아야 할 지식의 기초는 성서(하나님에 대하여), 역사와 사회과학(사람에 대하여), 과학(만물에 대하여)이다. 이 셋이 합쳐질 때 비로소 건전하고 균형 잡힌 지식을 구비하게 된다.
역자 양현혜 교수가 쓴 부록 ‘우치무라 간조에 대하여’에는 간조가 가졌던 ‘교회’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무교회주의를 주장했던 그가 교회 자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틀 안에서 권력화‧제도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전도자의 자리는 교회 안이 아닌 밖에 있으며, 예수님이 나의 교회이기에 전하는 복음의 정신과 사람의 생명을 위하는 정신을 고매하게 보았다. 자칫 목회자들만을 위한 책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전도’는 성직을 포함하여 ‘복음을 전한다’는 폭넓은 의미로 쓰였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가진 전도의 정신을 비추어 살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