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결론
주기철 목사 성역 백 주년 기념판
‘사랑의 순교자’로
백 년의 주기철을 다시 쓰다
기독교 역사학자 이덕주 교수는 지금까지의 주기철 연구들이 기자에 의해 현장에서 메모하여 복원된 설교문을 근거하여 이루어져 온 사실을 알고, 순교 전 간행된 신문과 잡지들을 찾아내 총 19편의 원사료들을 발견했다. 이 설교 원문들과 비교해 기존 설교들을 보니 일부 또는 결론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기자에 의해 복원된 설교문이 의도한 내용은 불굴의 순교자 주기철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원사료들에서 읽은 주기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별을 슬퍼했던 평범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만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결론이 십자가 순교의 길이었다. 주기철 목사가 감옥 안에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딘 것은 그의 강한 체력이나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그와 함께하신 그리스도, 그 사랑의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이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십자가를 지려고만 하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그래서 갈보리 산상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이다.”
― 주 목사가 두 번째 검속을 당해 6개월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후 산정현교회 교인들에게 남긴 말
올해 주기철 목사 성역 100주년을 맞이하여 20년 전에 출간되었던 첫 책을 새롭게 전면 개편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이전 책에서 주력했던 사료 비평과 선행 연구에 대한 비평을 빼고, 그 사이 새로 발견된 자료 특히 총독부나 일본 정부에서 간행했던 비밀보고서나 일반 언론지에 실렸던 관련 기사들을 참조하여 내용을 보완하였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가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던 원사료들의 일부를 본문에 인용하였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각색되지 않은 주기철 목사를 만날 수 있다.
◾주기철 목사 목회 약력
주기철 목사는 1923년 봄 평양 장로회신학교 재학 시절 경남노회 양산읍교회 조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25년 12월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당회장을 역임하였고 1932-33년 경남노회장으로 사역했다.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하여 예배당을 신축했고 1937-38년 평양노회 부노회장에 선임되었으나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아 평양경찰서에 구금된 상태에서 1940년 3월 평양노회로부터 목사직 제명 처분을 받았다. 가족까지 목사 사택에서 쫓겨난 상태에서 주기철 목사는 홀로 외롭게 투쟁하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형무소 병감에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