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업인의 표상, 박종규가 걸어온 길
기업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며 M&A를 통해 회사도 물건처럼 사고파는 오늘. 저자의 목표는 큰 기업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다른 기업에 넘겨서는 안 될 투명하고 청렴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업을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 주주, 사회의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시련을 헤치고 50년간 한길을 걸어온 (주)KSS해운 박종규 고문의 발자취.
경영과 자본의 분리, 그 이상을 꿈꾸다
‘기업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저자는 확신 있게 답한다. “기업인이 개인적 사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업권 취득부터 금융 조달까지 비자금이 안 들어갈 수 없음을 실질적으로 기업 경영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터. 1969년 말 (주)KSS해운을 설립한 저자도 눈앞에 큰 사업이 어른거릴 때마다 투명 기업을 포기하고픈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결국은 작지만 깨끗한 기업 쪽을 택했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깨끗한 회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25년간 KSS해운을 경영한 뒤 회사 후배에게 사장 자리를 내주었고 이후 세 명의 전문경영인 CEO가 대를 잇고 있다. 사장을 그만두면서 경영에 일체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그 약속은 주주 권한인 정관 변경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 지금도 지켜 나가고 있다. 대주주 권한인 사장 추천권도 포기하고, 주주배당률 결정권도 내놓았다. 스스로 배당받는 주주의 길을 택한 것. 이렇게 주인이 사라져 버린 빈 자리에 직원이 들어서 그야말로 ‘직원이 주인 된 회사’로 진화하는 과정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저자는 임직원들을 창업 초기부터 동업자로 여겼다. 동업의 기반은 회계의 투명성이다. 그래서 리베이트 없는 회사를 만들었다. 근로자가 동업자이니 노사가 따로 없다. 회사가 이익이 나면 동업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임직원에게 배당을 주는 성과공유제를 채택했다. 이익배당금을 받는다는 것은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인데, 직원이 주인 대접을 받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하고 그 결과 이익은 더 커졌다. 상하차별이 사라지고 토론 문화가 왕성해지면서 인격적 평등도 이루어졌다. 회사 내에 지시나 명령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그 대신 자율과 자유가 꽃피었다.
기업의 목적은 구성원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
‘이런 일은 작은 기업에서나 가능하지, 조직이 크면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자는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인간 본성에 역행하지 않으면 조직 규모에 관계없이 작동할 수 있다. 그래서 KSS해운의 성과공유제는 세상을 바꾸고 기업 경영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반세기의 사사(社史) 속에는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많았다. 젊은 후배들에게 회사의 진실된 역사, 특히 실패한 역사를 알려 다음 후배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이다.
1부 도입부에는 저자의 월급쟁이 시절 경험담이 담겨 있고, 그때의 경험이 경영철학이 되어 제1, 2부의 KSS해운 창업과 역경의 역사에 녹아들어 있다. 제3부는 2005년 저자가 위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남은 인생에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고서, 과거 기아산업, 소니(Sony) 등에서 있었던 전문경영인 체제의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지배구조 확립 과정을 담고 있다. 그 대안으로 사외이사 제도를 활성화하여 이사회를 경영 주체로 삼았다.
특히 제9장에 기술된 ‘임직원 성과공유제’는 임직원에게 결산 이익금에 연동하여 배당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팀별·개인별 차등을 두지 않는다. 그 결과 횡적 소통과 협력정신이 왕성해졌음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성과공유제는 구미 선진국 기업에서 흔히 채택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생소한 개념이다. 이를 시행하면서 KSS해운이 창출해 온 다양한 효과들을 독자들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자신이 속한 기업과 위치에 맞는 여러 적용점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