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에 뿌려진 순교의 씨앗,
섬 전체에 꽃으로 피어나다
1. 남도의 낙원, 증도를 찾다
크고 작은 1,004개의 섬으로만 이루어진 전남 신안은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절경으로 가득한 고장이다. 아름다운 천사의 섬 가운데 ‘천국의 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 증도가 있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될 만큼 천혜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천천히 걷기 좋아 올레길, 둘레길이 부럽지 않은 걷기 명소다. 남도의 깨끗한 바다와 소금 꽃 피어나는 태평염전, 짱뚱어와 농게가 뛰노는 건강한 개펄이 어우러진 섬을 5년 전 처음 찾은 저자는 이러한 섬의 외형뿐 아니라 섬사람들의 독특한 내면세계에 주목했다. 2,200여 명이 살고 있는 섬에 교회는 열한 개나 되지만, 사찰은 물론 굿당이나 성황당 하나 없다. 풍파가 몰아치는 바다를 일터로 사는 섬마을에 그 흔한 풍어제 한 번 열리지 않는다. 주민 90퍼센트 이상이 예수를 믿는 섬 주민들에게 산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구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신앙이 곧 삶 자체인 이들의 삶과 신앙의 길에 궁금증이 일어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문준경이라는 한 여인의 애잔한 사연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날마다 예수와 함께 사는 증도 신앙 공동체 이야기를 2007년 《천국의 섬》으로 펴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문 전도사와 증도를 알게 되어 직접 증도를 찾았으며, 이 책을 토대로 2009년 12월 CBS에서 창사 특집 드라마 <시루섬>이 제작·방영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초판 출간 이후 증도에 다리가 놓이고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다시 한 번 심층 취재하여 새로운 증도의 모습을 소개한다. 마을 한 곳 한 곳을 직접 찾아 담아낸 50여 컷의 사진으로 증도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2. 신안의 사도 바울, 문준경
문준경은 1891년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암태도에서 태어나 넉넉한 양반 가문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유복하게 자랐다. 착하고 지혜로운 그녀를 모두들 아꼈다.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여자는 집안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완고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림을 배우며 반듯한 규수로 성장한다. 열일곱 나이에 신랑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증도로 시집을 가지만, 결혼 첫날부터 과부 아닌 과부가 되고 만다. 결혼을 하면 바라던 일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는 이미 살림까지 차린 소실이 있어 남편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동서의 모진 시집살이 속에 외로운 삶을 살던 문준경은 전도부인의 인도로 출석하게 된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전도부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친화력이 좋고 노래를 잘했던 문준경은 찬송을 부르며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덕분에 하나님을 만났다. 하지만 성경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경성성서학원에 들어가 체계적인 공부를 했다. 당시 북교동교회에서 목회하던 목회자이자 경성성서학원 졸업생인 이성봉 목사의 도움이 컸다. 학기 중에는 경성성서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 기간이 되면 고향에 내려와 신안 일대 섬마을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임자도 진리교회를 시작으로 마을 곳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일 년이면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아 없어지도록 마을을 누비며 가난한 사람에겐 위로자, 병자에겐 의사, 아이 낳는 집에는 산파가 되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오직 신앙의 힘으로 사도 바울처럼 전도 여행을 계속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섬마을에도 공산당이 들이닥쳤다. 문준경 전도사는 끝까지 교인들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국군이 섬에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증동리 앞바다 갯벌에서 공산당에 의해 처참하게 순교했다. 그녀의 장례식 때는 김구 선생의 장례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뿌린 순교의 씨앗은 증도에 깊이 뿌리내려 섬 전체가 예수를 믿는 ‘천국의 섬’이 되었다.
3. 왜 ‘천국의 섬’인가?
우리나라 대표적 여성 순교자 문준경의 삶과 사역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에 증도가 순교 성지로서 ‘천국의 섬’이라 불리는 것은 아니다. 단일 염전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태평염전에서 우리나라 천일염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생산해 내는, 빛과 소금의 땅이기 때문도 아니다. 문준경 전도사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한 복음이 증도 땅에 떨어져 섬 전체에 풍성한 열매를 맺은 까닭이다.
200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신교 인구는 전체의 약 18퍼센트 정도다. 개신교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니 지금은 그 비율이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남 신안군의 복음화율은 35퍼센트다. 전국 평균의 두 배에 가까운 놀라운 수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증도의 복음화율이다. 사실상 증도의 거의 모든 가구가 예수를 믿는 가정이다. 섬 안의 열한 개 교회에는 주일 예배 때마다 교인들로 가득 찬다. 지금은 증도에 다리가 놓이면서 관광객이 많아져 덜하지만 예전에는 주말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네마다 교회가 넘쳐 나고 교회마다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잘 갖춰졌지만, 한국 교회는 성장은커녕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는 신앙의 선배들이 이 땅의 뿌린 뜨거운 피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증도 신앙 공동체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4. 길 위에 놓인 섬
증도에 가려면 남도의 붉은 흙길을 지나 지도, 송도, 사옥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도착해서 섬을 둘러보려면 또 수없이 많은 길을 걸어야 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하게 되어 있는 산책로는 다섯 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천년의 숲 산책로는 본문에도 사진과 함께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증도는 어딜 가도 소나무 천지지만 특히 산책로로 추천할 만한 곳은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짱뚱어다리까지 이어지는 천년의 숲 산책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10만 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걷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된다.”(33쪽)
증도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길이 있다. 썰물 때 지나다닐 수 있도록 개펄 위에 놓은 노두길이다. 60여 년 전 문 전도사도 고무신을 신고 이 섬 저 섬을 오갈 때 노두길을 건넜다. 지금은 웬만한 밀물에도 잠기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포장을 해놓아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육지 사람들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그리고 증도 사람들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진 길이 하나 있다. 영성의 길, 신앙의 길, 순교의 길. 문준경 전도사가 묵묵히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증도 여행의 백미는 천천히 침묵으로 그 길을 함께 걸어 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