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초월한 통찰을 담은
빛나는 고전, 《천로역정》
천로역정, 친근한 우화
명실 공히 세기의 고전이 된 《천로역정》. 그러나 이 책은 서가에 장중히 모셔져 있을 귀족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버니언은 자신의 삶과 신앙을 투영한 심오한 메시지를 서민적인 우화 속에 담았고 아이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격의 없이 웅성거리며 책을 펼치는 바로 그 시간 속으로 몰려들어 온다.
그다지 모범적인(?) 인간이 아니다가 뒤늦게 회심한 존 버니언은 종교적인 이유로 두 번이나 투옥되어 십여 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출옥 이후에도 전도를 위해 계속 설교하러 다니던 중 비를 심하게 맞아 고열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었다. 생의 마지막까지 충실한 전도자로 살았던 버니언의 진솔한 열정이 담긴 이 책을 두고 찰스 스펄전은 성경 이후 최고의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스펄전 외에도 수많은 명인들이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그들의 글 근저에는 《천로역정》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다.
《천로역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연원이 깊다. 존 버니언이 수감 생활을 모두 마친 후 1678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조선 후기인 1895년에 게일 선교사에 의해 최초로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었다. 일본어 중역을 거치지 않은, 근대의 첫 번역소설인 셈이다. 원제인 ‘The Pilgrim’s Progress’를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한자어 제목으로 번역해 이 책에 붙인 것도 게일 선교사이다.
생생한 고전에 날개를 달다
이번에 홍성사에서 출간한 《천로역정》은 순례길의 진지한 여정을 이 왁자지껄한 우화에 담은 저자의 의도를 실감나게 살려, 세대 간의 공감대를 이루며 현재의 삶과 신앙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원전의 내용을 그대로 담았지만 동화책 같은 모양에 읽기 편한 문장을 사용해 성인은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삽화는 19세기 유명한 석판화가들의 작품으로 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눠 볼 수 있게 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크리스천’의 순례길 지도를 그려 보며 이 모험담을 함께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순례길을 함께 걷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중심 주제에 대한 친절한 해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버니언의 삶이 배어 있는 실제 장소들과 그 시대의 배경도 책 말미에 간략히 담아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이 이야기의 숨결을 좀더 폭 넓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왜 다시 《천로역정》인가?
‘크리스천’으로 명명한 그리스도인 순례자의 여정을 한 편의 우화로 풀어 낸 이 책이 종교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속성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 때문일 것이다. 우화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름이 곧 그 존재를 대변하는 인물들은 얼핏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그들의 존재가 빚어내는 파장은 통렬하고 생생하다. 이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순례의 길은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세대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효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오래된 이야기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더욱 절실한 호소력을 가진다. 주인공이 밟아 나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떠밀리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하게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