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향락, 이기심과 편의주의에 젖은 지금 여기의 우리.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침몰, 붕괴, 몰락, 파멸뿐이다.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 아니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돌이켜 아버지께로 발걸음을 향하면 그분은 맨발로 달려 나와 우리를 얼싸안고 기쁨의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물질과 성공에 눈멀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떠나 유리하며 방황하는 지금 여기의 탕자들이여, 성찰하라! 돌아가라!
지금 여기의 현실을 뒤흔드는 박력!
감성적 음미와 지성적 깨달음이 있는 ‘돌아온 탕자’ 비유의 해석사 속으로!
‘회화적 말투의 명수’인 예수의 대표적 비유, ‘돌아온 탕자’를 다룬 그림과 문학 작품을 해석한다. 탕자의 비유를 그린 미술 작품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해 가는 1부와 성서 텍스트의 상세한 해석과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의 문학 작품에까지 확대되는 해석사․영향사적 개관을 추적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이미지와 세밀한 작품 해석을 따라가며 ‘탕자의 비유’에 담긴 참 의미를 깨닫는 순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성찰하라, 돌아가라”고 외치는 자성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림과 문학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 및 시대적 배경과 사상 속에 투영된 탕자의 여정, 그 입체적인 정신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자.
다채로운 표현, 궁극적 메시지
수세기를 거쳐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의 모티브로 다뤄진 ‘돌아온 탕자’ 비유는 다양한 작품으로 남겨졌다. 그들은 원 텍스트, 즉 성서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를 새롭고도 신선한 시선으로 해석하여 다각도로 표현하는 실험을 감행하였다. 그 다양한 작품 속에는 각 나라 특유의 정서와 시대 배경 등에 따른 개개 작품의 고유성과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으나 ‘복음’을 담은 유일한 메시지만큼은 전혀 변색되지 않고 또렷이, 그리고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다 돌아온 죄인을 다시 당신 품에 안으시며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넓고 극진한 사랑이다. 이 책의 1부에 실린 작품들과 그 해석을 통해 ‘탕자의 비유’ 속에 담긴 의미와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11, 12세기 고사본에 수록된 삽화부터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를 명확히 드러내는 작품을 비롯하여 렘브란트, 루벤스, 로댕, 샤갈 등 유수한 미술가들이 ‘돌아온 탕자’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했는지 파악하는 가운데 그들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으며, 중국 미술가 하기와 범박의 ‘전지’剪紙 작품과 일본 미술가 와타나베 소이치의 추상적이지만 본질을 형상화한 그림을 통해 ‘돌아온 탕자’ 비유의 예술적 변주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각 작가의 개성과 각 나라의 특수성이 선연히 드러나는 이들 작품은 단 하나의 궁극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 다채로운 작품들을 하나로 모으는 주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이며, 그 화해의 매개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자아 모색을 위한 탕자의 여정을 따라
일반적으로 ‘돌아온 탕자’ 비유를 대할 때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은 탕자의 회심과 귀향, 그리고 아버지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탕자가 집을 떠난 ‘동기’에 대해서는 깊이 숙고해 보지 못했다. 성서의 원 텍스트에 입각하여 탕자의 비유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집을 떠나는 탕자의 내면에 어떠한 심리가 잠재되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먼저 성서를 상세히 해석해 가며, 고대 교부들의 해석과 종교개혁 시대의 설교와 연극에 비춰진 탕자의 정신사를 차근히 짚어 본다. 주목되는 것은 문학 작품에 형상화된 탕자의 모습이다. 지드와 릴케,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은 각기 다른 시점과 배경의 소설로 창작되었으나 모티브만은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자아 모색을 위한 탕자의 여정’이다. 이들의 작품은 성서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 인간의 실존, 그 심층에 닿아 있다. “내가 찾았던 것은 나란 존재가 누구인가였습니다.” 결국 탕자의 궁극적인 소망은 ‘자아’를 찾는 것이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아버지 집을 떠나는 젊은이의 모습은 세 작가의 작품 속에 여실히 형상화되었다. 아울러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살펴본 탕자의 모습 또한 자기 능력과 가능성을 스스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는 요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자기실현’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탕자가 집을 떠난 것은 실존적 자아를 찾기 위한, 즉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본향으로의 회귀, 그 소망의 발걸음
아버지의 집을 떠나 물질과 향락에 젖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 그의 모습이 바로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저자는 피조물로 이 땅에 창조된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고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린 채, 오히려 순리를 거슬러 개발과 파괴를 일삼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 문명과 산업사회의 병리를 지적한다. 단적인 예로 3․11 동일본 대지진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준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돌아온 탕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성찰하라, 돌아가라, 회개하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본향’으로, 즉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바르트가 말하는 ‘죄’의 자각과 회개) 하나님 아버지가 베풀어 주시는 참 안식과 평안 가운데 머물기를 촉구한다. 결과적으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생생하고도 명료한 ‘복음’이다. 만능주의 망상과 강박적 불안 심리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끝없는 공동空洞을 메우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새롭고 산 길, 곧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앞길에 멸망 아닌 소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을 근원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것은 바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오롯이 담긴 ‘복음’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