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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이 《토박이 신앙산맥》이 진정 한국 교회의 사도행전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토박이 신앙산맥》 제2권을 펴냄에도 그런 바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주변에서 한국 교회가 완전히 토착화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한편, 신학자들에게서는 한국적 신학의 수립이니, 토착화 신앙, 민중신학, 해방신학이니 하는 새로운 신학의 등장을 보게 된다. 더욱이 교회사가들은 한국 개신교 선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도 이제는 한국 교회사 대계(大系)쯤은 가져야 한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토박이 신앙산맥》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날 인권투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사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인권보다 죽은 사람의 인권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 듯싶다. _7면, ‘머리말’
◀북간도 우리 이주민 사회의 아주 특이한 현상은 그들이 어딘가에 정착하면 반드시 학교를 먼저 세웠다는 사실이다, 명동에서만 아니라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동, 와룡동, 소영재에서도 꼭 같은 현상이 있었고, 그 밖의 우리 모든 이주민 사회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 다음에 교회가 섰다. 아니, 교회가 먼저 서고 그 다음에 학교가 서는 곳도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학교가 교회일 수 있었고, 교회가 학교일 수 있었다. 이것이 북간도 이주민 사회의 특징이었다. 따라서 이것이 한국 초대 교회 전체의 특징이기도 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북간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를 든다면 명동교회를 비롯하여 와룡동교회, … 하광포교회 등인데, 이 모든 교회가 한결같이 복음 선교와 국민 교육을 꼭 같이 했다.
_61면, ‘북간도와 러시아 영내까지’
◀신민회라는 비밀단체가 한국 근세사의 중요한 것이라면 이것을 연구함에 먼저 상동교회를 알아야겠고, 또한 전덕기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문제를 파고들어 이번에 그 하나하나의 독립꾼들의 내력을 파헤쳐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동파’라는 대명사를 왜 쓰게 되었으며, 기독교가 한국 독립운동에 얼만큼 관여했는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그떄까지의 역사는 수박 겉핥기식 역사였으므로 이번에 수박 속의 참맛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달라붙은 것이다. 달라붙은 바에는 끝장을 내고야 말 터이다. 뿌리를 파내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터이다. _143~144면, ‘상동파―그 역사와 독립꾼들’
◀ 하느님께서는 이번 나의 마지막 역사 자료 수집 여행을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여러 차례 아슬아슬한 고비를 극적으로 넘겼다. 이번에 나를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때까지 주로 이기풍 목사에 관한 것을 썼다. 제목이 ‘제주도 선교’인 만큼 그 선교의 장본인이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용 성구 생략)… 마태복음 13장 1-9절까지의 성구가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삼다 삼무의 나라, 즉 돌?바람?여자 등 세 가지가 많고, 도둑?대문?거지 등 세 가지가 없는 나라라는 것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도둑 없고, 대문 없고, 거지 없는 땅은 분명히 좋은 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돌도 많고 바람도 많아서 아무리 열심히 씨를 뿌려도 바람에 날아가 버리거나 돌짝밭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수가 많았던 것이다.
만약 씨 뿌리는 이기풍 목사가 돌짝밭이나 길가나 가시밭을 피하여 좋은 땅만 골라 씨를 뿌렸던들 얼마나 많이 결실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번에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결실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기풍 목사의 이야기는 중단하고 제주도 토박이들의 신앙산맥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_248~249면, ‘제주도 선교’
머리말
1. 북간도와 러시아 영내까지
2. 상동파-그 역사와 독립꾼들
3. 제주도 선교
4. 조상 찾아 구만 리 장천
발간사 _전국재
전택부
호는 오리吾里. 1915년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월간 새벗>과 <사상계>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기독교사만필>, <토박이신앙산맥>, <양화진외인열전>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하였고,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한글 운동을 한 공로로 1978년 문교부 장관 표창, 1980년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부부의 십계명》《가정의 뜻, 금혼잔치 베풂의 뜻》(이상 홍성사), 《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연세대학교 출판부), 《두산 김우현 목사 그 신앙과 사상》(기독교문사), 《토박이 신앙산맥 1,2,3》(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기독교 청년회 운동사》《씨알머리 없는 세상》《자화상을 그리듯이 1,2,3》(이상 범우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