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렐란드라》는 에덴동산 이야기다. 〈창세기〉, 밀턴의 《실낙원》에 비견될 만한 소설이다. 이미지가 때로 어떤 논증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안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인물 묘사와 사상의 표현에 심혈을 기울여 이 작품을 썼다. 《고통의 문제》,《기적》과 같은 자신의 변증서로는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던 천국의 이미지를 그는 이 작품에서 풍부하게 전한다.
지구로부터 약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섬들이 떠다니고, 신화에나 나올 법한 동물들이 살며 지구상에는 없는 과일이 열리는 곳, 페렐란드라. 그곳은 완벽한 고요와 이전에 없던 쾌감, 가늠할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며,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는 곳이다. 주인공 랜섬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신의 뜻에 순종하여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 아름다운 행성에 도착한다. 그는 이곳의 여주인인 초록 여인을 사악한 물리학자 웨스턴의 몸을 빌린 악의 세력에서 보호해야 한다.
랜섬과 예수 그리스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랜섬Ransom’이라는 이름에는 ‘속죄’, ‘몸값’의 의미가 있다. 랜섬은 페렐란드라를 구하려고 자신을 내놓는다. 그는 악한 영에 씐 웨스턴과 싸우다가 발꿈치를 찢기지만 결국 승리한다. 그는 죽음을 상징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가 사흘쯤 뒤에 다시 올라온다. 그리고 두려움과 고뇌 속에서도 성령에 순종한다.
J. R. R. 톨킨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페렐란드라》가 포함된 〈우주 3부작〉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시중에 읽을거리가 적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톨킨이 “공간과 시간 이야기들은 ‘회복’과 ‘탈출’을 제공하지”라고 하자, 루이스가 “우리는 자네의 《호빗》 같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네. 우리 중 한 사람은 시간 여행 이야기를 쓰고 다른 사람은 공간 여행에 대해 쓰세”라고 제안했다. 루이스가 공간 여행을 쓰기로 결정되어 쓴 책이 바로 〈우주 3부작〉의 제1권 《침묵의 행성 밖에서》이다. 톨킨이 쓰기 시작한 책 제목은 《잃어버린 길》이었는데 4장까지 쓰고 완성하지 못했다. 톨킨이 새로 쓴 작품이 불후의 ‘시간 여행’ 이야기인 《반지의 제왕》이다.3. 줄거리
전편(《침묵의 행성 밖에서》)에서 사악한 물리학자 일당에게 납치되어 말라칸드라(화성)에 갔다 온 랜섬 박사. 그는 이번에는 신의 뜻에 이끌려 페렐란드라(금성)에 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고요한 섬에는 신화에나 나올 법한 동물들이 살고, 지구에서는 보지 못한 과일들이 가득하다. 랜섬은 이곳에서 페렐란드라의 왕비, 초록 여인을 만난다. 쾌활하고 순수한 그녀와 랜섬은 근심 없는 시간을 보내는데 악마에 씐 물리학자 웨스턴이 우주선을 타고 그들 앞에 나타난다. 화성에서보다 외계 언어가 더 유창해지고, 지적으로도 예리해진 웨스턴은 사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악에 대해 무지하고 순수한 왕비가 말렐딜(창조자)의 명령을 어기도록 교묘한 말로 그녀를 유혹한다. 왕비가 웨스턴의 논증에 넘어갈 것을 염려한 랜섬은 웨스턴과 논쟁을 벌이지만, 악마의 힘을 입은 웨스턴은 논쟁에서 초인간적 명석함을 보인다. 게다가 왕비와 랜섬은 잠이 필요하지만 웨스턴은 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안 랜섬은 더욱 절망에 빠진다. 웨스턴이 거의 승리할 무렵 랜섬은 그와 몸으로 부딪쳐 싸우라는 내면의 음성을 느끼는데……. 랜섬은 웨스턴과의 격투 끝에 지하세계로 빠져들어 가지만 어둠 속을 더듬어 천신만고 끝에 그곳을 탈출한다. 악을 물리친 그를 맞이하러 나온 왕과 왕비, 그리고 온갖 동물들이 ‘위대한 춤’의 향연을 벌이고, 랜섬은 왕과 왕비의 환송을 받으며 지구로 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