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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으로

13,950

발행일  2001.4.18
상세정보  오디오북 / 160page
ISBN  9788936504991

카테고리:

품절

한경직 목사 타계 1주기 기념 메시지북
개인의 실존ㆍ교회ㆍ민족ㆍ인류에 대한 유훈(遺訓)이 담긴 메시지”

무게 596 g

저자

한경직
추양(秋陽) 한경직(韓景職) 연보

1902 12월 29일, 평남 평원군 공덕면 간리 마을에서 한도풍과 청주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912 진광소학교 입학(10세)
1914 3년 연상인 김찬빈과 결혼(12세)
1916 진광소학교 졸업, 정주 오산학교 입학
1918 딸 한순희 출생
1919 오산학교 10회 졸업
1919-1920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
1922-1925 평양 숭실대학 이과 수학(20세)
1926 미국 엠포리아 대학 1년 수료(이학사)
1926-1929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B.D)
1929-1931 결핵으로 투병(27세)
1932-1933 귀국 후 평양 숭인상업학교 교목 겸 교사, 숭실대학 강사
1933 신의주 제2교회 전도사로 부임(31세)
1934 의산노회에서 목사 안수
1938 8월 4일, 아들 한혜원 출생 / 9월, 장로교 신사참배 결의
1939 5월, 보린원 설림
1942-1945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에서 추방당한 후 보린원 운영
1945 8월 15일, 한병직, 윤하영 목사와 함께 신의주자치회와 기독교사회민주당(한국 최초의 정당) 조직(43세) / 10월, 공산당 탄압으로 월남 / 12월 2일, 일본 천리교 경성교구본부 접수 후 베다니전도교회 설림
1946 11월 12일, 베다니전도교회를 영락교회로 개명
1947 1월 7일, 한국에서 최초로 2부제 예배 실시(45세) / 3월 27일, 영락보린원 창설(일본 가마쿠라 고아원 인수) / 11월 5일, 대광중고등학교 설립
1948 5월 1일, 엠포리아 대학 명예신학박사
1949 3월 24일, 영락교회 석조 예배당 신축
1950 보성여자중고등학교 재건, 이사장 / 기독교아동복지회(CCF) 이사장 / 6월 4일, 석조 예배당 입당 / 7월 3일, 대전에서 기독교구국회 출범, 회장 추대(48세) / 7월 9일, 인민군에 의해 교회당 징발
1951 정부 파견 유엔 사절도 도미 / 8월 1일, 성경구락부 개설 / 11월 10일, 부산 다비다모자원 설립
1953 1월 20일, 영락고등공민학교 설립 /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세계선명회(현 월드비전) 이사장(35년간, 51세)
1954 영락모자원 설립 / 숭실대학 재건 초대 학장
1955 4월 22일, 연세대학교 명예신학박사(53세) /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0회 총회장 / 12월 8일,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195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1958 7월 15일, 학교법인 영락학원 설립, 초대 이사장
1962 서울여자대학 2대 이사장
1965 전국복음화운동 명예회장
1967 숭실대학 이사장
1968-1975 마포삼열 박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1969 3월 1일, 영락여자신학교 설립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68세)
1971 12월 20일, 장로회신학대학 4대 이사장
1973 1월 14일, 영락교회 원로목사 추대(71세) / 한국교회진흥원 설립, 원장 /군복음화운동후원회 회장 추대 / 아세아연합신학원 이사장
1974 2월 14일, 서울노회 공로목사 추대
1976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 한국외항선교회 명예회장
1977 10월 10일, 숭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1983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총재(81세)
1984 재단법인 남강문화재단 이사장
1984-1985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이사장
1985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모교를 빛낸 영예의 동문상’ 수상
1988 군복음화운동후원회 회장 추대
1989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준비위원회 대표회장 / 세계선명회 명예이사장
1990 사랑의쌀나누기운동 명예회장(88세)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1992 4월 29일, 템플턴상 수상(90세)
1997 사단법인 한국군복음화운동 명예회장
1998 대한민국 건국공로상 수훈
2000 4월 19일, 타계(98세) / 4월 24일, 장례식-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저서

건국과 기독교 1956, 기문사
신자의 사회적 사명 1956, 기문사
창조적 생활의 비결 1962, 기문사
팔복 1966, 기문사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 1968, 크리스천출판사
내일을 사는 인생 1978, 신우사
한경직 목사 설교전집 1987, 기독교문사
예수를 바라보자 1985, 삼일서적
사도 바울에게 배운다 1989, 기독교문사
한경직 신앙상담 1986, 예목출판사
병상에서의 묵상 1998, 영락교회선교부 
외 다수

차례

1부 하나님과 예수
message1. 여호와의 아름다움(시 27:1-14, 1967.4.16)
message2.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13, 1964.2.23)

2부 개인의 실존
message3. 인간의 기갈과 그 양식(요 6:22-35, 1964.5.17)
message4. 두 문 두 길(마 7:7-20, 1970.9.20)

3부 교회의 역할
message5. 세 친구의 비유(눅 11:1-13, 1958.6.15) 
message6. 침묵의 화(고전 9:16-27, 1965.2.7) 

4부 민족의 살 길
message7.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17, 1970.2.15)
message8. 바벨론 강변의 눈물(시 137:1-9, 1978.10.5) 

5부 인류의 소망 
message9.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1:33-12:2, 1971.9.19) 
message10. “By My Spirit”(Zec 4:6, 1966년, Berlin)

책속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 민족의 형편이야말로 밤중에 길 가던 사람들이 기갈로 인해서 주님의 교회를 찾아 나오는 것과 같은 때를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유감인 것은 한국 교회는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부족합니다. 생명의 양식의 준비가 부족합니다. 우리가 개인으로도 그렇고 교회로도 그렇습니다. 왜 부족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는 까닭입니다. 왜 한국의 교회가 좀 더 간절히 사모하고 좀 더 간절히 기도하고 좀 더 생명의 양식을 사모해서 간절히 찾고 두드렸던들, 우리 한국 교회에 생명의 양식이 풍부해서 기갈이 심한 우리 민족을 구원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는 않은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오늘 저녁에 기도하는 저녁인데, 특별히 나 자신을 생각해서, 내 교회를 위해서, 내 동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 ‘3부. 민족의 살 길 – 세 친구의 비유’ 중에서 

세속주의와 세상적인 타협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의 상당한 지역에서 전통 교회들이 예전의 힘과 역동성과 활력을 잃어 가는 것을 볼 때,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가 다시금 늑대들 가운데 있는 한 마리 양으로 비쳐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어린양이 마침내 하늘과 땅의 모든 잔악한 세력들을 정복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정병들이여, 앞으로 진군합시다! 하나님의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반드시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 ‘5부. 인류의 소망 – 오직 나의 신으로’ 중에서

저자 인터뷰

“참된 헌신의 결과가 청빈이었습니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는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졌으며,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기념사업회는 1981년 한경직 목사의 삶과 사역을 배우고 기리자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1997년 8월부터 본격적인 사업 수행을 해 나가다가 작년 목사님 소천 이후 실제적인 사업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의 일은 먼저 학술적으로도 역사적인 인물인 한경직 목사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연구를 토대로 그를 배우고 알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민족과 교회를 위해 헌신해 오신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민족과 교회를 위한 사업을 펼치는 것입니다. 현재 당면한 과제는 영락교회 내의 한경직목사기념관을 개보수하여 자료관, 역사박물관, 도서관 등의 기능이 종합된 연구 센터를 올해 안으로 마무리하는 일입니다. 더불어 전집 편찬 사업을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아는 웬만한 영적 지도자는 자서전을 집필한 것으로 아는데요. 생전에 한경직 목사님은 자서전 집필을 거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자서전 집필을 거부했다기보다는 의도적, 혹은 다른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큰일을 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삶을 지향하셨습니다. 일화로, 극동방송국에서 진행하려던 역사 자료 축적을 위한 한국 교회의 원로 인터뷰도, 장신대에서 수여하려던 명예박사학위도 목사님의 거절로 다 무산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자서전이 없는 이유는 그러한 겸양과 섬김의 맥락에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실제로 여러 매체, 방송, 혹은 학자와의 대담 등을 통해 당신의 생애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이번 메시지를 들어보면 하나님과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개인과 교회, 민족과 인류를 총망라합니다. 그 중 생전에 목사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부분이 있다면…….

– 여러 가지 측면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분의 삶과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저는 역시 예수 사랑, 나라 사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큰 틀 속에서 생전에 (특히 은퇴 이후에) 민족의 통일과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많은 관심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점을 맞추고 찬사를 보내는 건 한 목사님의 청빈한 삶입니다. 그런데 청빈한 삶은 그분의 모습 중 일부라고 여겨집니다. 실제 그보다 더 높이 살 만한 모습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렇습니다. 청빈은 목사님의 삶에서 드러나보이는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기독교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청빈한 삶을 살아오고 또 살아가는 고결한 인격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청빈은 먼저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빈의 동기와 실천, 헌신의 모든 이유가 결국 예수 사랑에 있었습니다. 또한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 자신, 이 사회와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들 앞에서,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삶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사는 의식있는 목회자였습니다. 그 진실된 헌신의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청빈한 삶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건, 인물이 사회의 핫이슈로 등장했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게 다반사입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그렇게 될까 염려되는데요. 혹 이번에 출간한 메시지북 《하나님의 영으로》 이후에 다른 출판 계획이나 기획이 있으신지요? 

– 중요한 질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마는 기념사업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단 지난 4월에 있었던 1주기 추모기념주간행사에 대한 자료집을 낼 생각입니다. 학술심포지엄의 자료에서부터 대중강연회, 설교, 추모사, 기도문, 추양백일장의 입상작품 등을 잘 챙겨 자료화 작업을 해서 이후 학술적인 조명과 같은 진지한 작업에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출판 작업을 검토중에 있습니다. 특별히 전집 편찬은 곧 진행될 것이며, 탄신 100주기가 되는 내년은 중요한 시기이므로 그에 준하는 출판. 행사 기획을 구상중에 있습니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이승준 연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