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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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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교회에 서린 처음 사랑을 더듬어 가는 여정

1.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우리의 옛 교회를 찾아서
20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백 년 이상 된 교회가 5백여 개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석철 집사는 이 교회들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두루 수소문해 보았지만 옛 모습의 예배당이 남아 있는 교회는 드물었다. 80년 이상의 건축령을 가진 교회 건물이 채 서른 곳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여러 목사님과 관계자에 조언을 구하고 교회사 서적을 뒤적였다. 그리고 1년여에 걸쳐 전국을 돌며 스물 네 곳의 1세대 예배당을 촬영했다. 우리의 처음 믿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건축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사진을 찍어 온 그에게 이 작업은 사명이었다.

교회가 이정표가 되는 고장 강화 교동교회에서 사역하는 구본선 목사에게 기독교 유적은 과거의 흔적 이상이다. 한국 기독교인의 믿음의 역사는 백 년의 신앙과 미래를 든든히 받치는 주춧돌이기에 교회사를 공부해 왔다. 그는 옛 예배당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찾아가 듣고 사료를 살펴 글을 썼다. 교회마다 생겨난 사연이 있었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낡은 건물이라고 허물어 버렸다면 교회를 설립한 이들의 신앙과 애국계몽운동, 그리고 순교의 길을 택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기억도 끊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작지만 오래 되새겨야 할 첫 모습을 간직한 곳,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은 크고 웅장한 것에 열을 올리느라 쉽게 지나쳤던 가치에 주목한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 바로 읽기
백정을 장로 삼은 교회, 일제 강점기 조선 거주 일본인 선교를 위한 교회, 남자도 여자도 설교자를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는 교회……. 세월이 스쳐갈수록 깊어지는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처음 예배당은 지역에 따라 서울·경기 지역 여섯 개 교회(정동제일교회/ 승동교회/ 강화읍성당/ 온수리성당/ 서도중앙교회/ 수촌교회), 충청 지역 일곱 개 교회(청주제일교회/ 청주수동교회/ 진천교회/ 음성교회/ 부대동교회/ 공주제일교회/ 강경북옥교회), 전라 지역 네 개 교회(두동교회/ 금산교회/ 목포양동교회/ 목포중앙교회), 경상 지역 일곱 개 교회(대구제일교회/ 부산 주교좌성당/ 안동교회와 자천교회/ 척곡교회/ 행곡교회와 용장교회)를 수록해 총 스물네 곳을 소개한다. 초기 부흥의 불꽃이 크게 일었던 평양을 포함한 북한 지역의 교회들을 소개할 수 없는 현실도 씁쓸하지만, 강원과 제주 지역에 남아 있는 옛 예배당이 없다는 점도 매우 안타깝다.

각 예배당의 생생한 모습뿐 아니라 그 내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고 교회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곁들여, 마치 교회 앞뜰을 거닐며 설명을 듣는 듯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백 년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 때때로 근처의 둘러볼 만한 유적지도 소개하고 있으며 주소와 연락처를 부록으로 수록해 이 책을 물꼬 삼아 예배당에 직접 찾아가거나 관련 내용을 찾아봄으로써 각자의 여정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3. 풍파에 요동치 않는 뿌리 깊은 교회들
예배 때마다 수천 명이 모여드는 대형 교회, 박물관이 부럽지 않은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라면 우리나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로 손꼽을 수 있을까?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교회라야 우리 기독교 유산으로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많은 기독교 유적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와 큰 전쟁,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불가피하게 파괴된 것도 많지만, 지켜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겪을 불편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안일함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쉽게 해온 것은 아니냐고 처음 예배당들이 말없이 묻고 있다. 세월의 풍파에도 한 세기를 굳건히 살아 낸 예배당처럼 우리의 처음 믿음은 굳게 뿌리내렸는가. 돌멩이 하나하나 가져다 돌담을 쌓아 올리고 다른 집을 떠받치던 낡은 대들보를 가져다 지어도 예배할 곳이 있어 행복했던 처음 믿음들을 만나는 여정에서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저자

구본선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광교회와 신현교회에서 사역했다. 1998년부터 강화 교동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교회사와 신앙을 주제로 한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장석철
愚谷.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건축공학을 전공했으며 롯데호텔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한국건축가협회,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전국 건축 사진 공모전의 심사를 맡기도 했으며 <Panorama of Landscape>(2003)와 <창덕궁 창건 600주년 기념 초대 전시>(2005)로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차례

머리말_예배당, 역사와 사람을 만나는 곳(구본선)
머리말_한국 기독교 200주년을 맞이할 예배당을 기대하며(장석철)
감수자의 말_소명감 하나로 완성된 책(이덕주)

서울・경기 지역
눈 덮인 교회당에서 처음 사랑을 노래하다_정동제일교회
사람 취급도 못 받던 백정이 장로가 되다_승동교회
예수님의 열두 사도, 용이 되었네_강화읍성당
잘 차려진 백 년의 추억_온수리성당
강화도 땅끝에서 소처럼 충성하다_서도중앙교회
일본의 수치를 드러내다_수촌교회

충청 지역
영원한 내일을 꽃피우는 교회_청주제일교회
한국인 최초의 주교를 배출하다_청주수동교회
충청북도 성공회 1번지_진천교회
꼬부랑 꼬부랑 가난한 자들의 노래_음성교회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준 교회_부대동교회
금강이 토해 낸 교회_공주제일교회
문이 닫혀 있는 교회_강경북옥교회

전라 지역
공평한 ㄱ자 예배당_두동교회
허리가 구부러졌어도 곱게 나이 든 교회_금산교회
전남 선교의 교두보_목포양동교회
기구한 예배당의 운명_목포중앙교회

경상 지역
경북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_대구제일교회
이제는 한국인을 위한 교회_부산 주교좌성당
한 척의 외로운 배_안동교회
깊은 산속에 묻혀 백 년의 소리를 담다_척곡교회
순교의 피를 흘린 교회_행곡교회

부록_주소록

책속에서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첫사랑은 정동에서 시작되었다.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 본부가 정동에 있었고, 최초의 교회와 근대적 학교, 병원이 정동에서 문을 열었다. 정동제일교회와 새문안교회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경신학교의 가르침과 시병원과 보구여관의 의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_28-29쪽, ‘눈 덮인 예배당에서 처음 사랑을 노래하다’(정동제일교회)에서

성당 왼편에 새로 지은 성당이 있다. 옛 성당이 평생 고향을 지킨 시골 할아버지라면 새 성당은 도시에서 내려와 집짓고 사는 부잣집 주인 같다. 새 성당을 지으면서 하마터면 옛 성당을 허물 뻔했다고 한다. 역사가 오랜 교회들의 한결같은 고민은 낡은 성전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일이다. 온수리성당도 같은 문제로 걱정했다. “성당을 헐고 새 성당을 짓자”, “성당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으니 그 전에 빨리 헐어 버리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성당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못 하나 박는 것까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_66-67쪽, ‘잘 차려진 백 년의 추억’(성공회 온수리성당)에서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성결교단 전신인 동양선교회 토마스 감독이 일본 경찰에 구타를 당한 것이다. 영국 출신으로 1910년 내한해 경성성서학원 원장과 감독을 겸하던 그가 강경성결교회 형편을 살피러 내려왔는데, 만세 시위를 지원하러 온 줄로 오해받은 것이다. 이 사건은 영국과 일본의 외교 문제로 확대됐다. 총독부는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했다. 1923년 토마스 감독의 매 값으로 교회 건축을 시작했고, 다음 해 9월 봉헌예배를 드렸다. 전화위복으로 예배당이 건축되고부터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감독이 일본 경찰에게 매를 맞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해졌다. _168-169쪽, ‘문이 닫혀 있는 교회’(강경북옥교회)에서

금산교회 강단은 남자석을 향하고 있어 휘장을 쳤을 때 남녀가 서로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설교자조차 여성도들을 볼 수 없다. 반면 두동교회 강단은 남녀석 중간을 향하도록 해서 강단 앞 팔각기둥과 건물 안쪽 모서리에 휘장을 쳐 남녀 신도는 서로 볼 수 없더라도 설교자는 양쪽을 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남녀를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이 건축물에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금산교회와 두동교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두 교회 건축 시기에 21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908년은 남녀가 엄격하게 구별되던 시절이었고, 1929년은 휘장을 철거하는 시대였다. 전북 문화재 전문가들은 “남녀유별의 유교 전통이 무너져 가는 1920년대에 ㄱ자형 건물을 통해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의 전통을 보여 주며 남녀 모두에게 신앙을 전파하려 했던 독창성이 돋보인다”고 평한다. _184-185쪽, ‘공평한 ㄱ자 예배당’(두동교회)에서

김종숙의 열심 있는 전도와 교육 열정에 힘입어 척곡교회는 봉화 지역에서 유력한 교회로 부상했다. 대부분의 지역 주민은 명동서숙에서 공부했고, 주일이면 120명이 모여 예배드릴 만큼 교회가 부흥했다. 그러나 김종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일에 앞장섰으며, 독립운동가들을 숨겨 준 것이 발각되면서 일본 경찰의 탄압을 받았다. (…)
“우리 할아버지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 목사가 된 최초의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는 봉화경찰서로 가서 경찰서장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칠 만큼 강단 있는 분이셨지요” (…)
대한제국 관리였던 김종숙은 을사늑약 이후에 처가가 있는 봉화로 내려와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설립했고, 그의 아들 김운학은 척곡교회 1대 면려회 회장이었다. 김운학은 죽기 전에 아들 김영성에게 척곡교회를 부탁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을 뿌리칠 수 없었던 김영성 장로는 교장 퇴임 후 척곡에 내려와 교회를 지키고 있다. 그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_277-280쪽, ‘깊은 산속에 묻혀 백 년의 소리를 담다’(척곡교회)에서

추천글

독자들은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만남’의 흔적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 만남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사진과 글의 만남이다. 이 책은 화보이며 동시에 교회사 책이다. 소명감으로 셔터를 누른 사진작가의 작품과 문서 자료와 현장 유적을 꼼꼼하게 따져 가며 기록한 젊은 교회사가의 글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현장을 답사하듯 사진을 죽 훑어본 다음, 안내자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글을 읽으면 좋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진을 보면 글과 이미지가 주고받는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복음과 역사의 만남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예배당들은 백 년을 넘거나 그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교회들이다. 한말 개화기에 복음을 접한 1세대 신앙인들의 감격과 헌신,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2세대 신앙인들의 고난과 투쟁, 그리고 해방 후 격동의 현대사를 살았던 3세대의 절망과 도전의 역사를 말없이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흠집을 찾아내려 따지듯 달려들기보다는 여유로운 호기심을 갖고 살펴볼 때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독교와 문화의 만남이다. 신학자 틸리히의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는 말처럼, 어떤 종교든 문화를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으며 모든 문화는 그 안에 정신적, 종교적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독교문화도 마찬가지여서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내용에서 같지만 유럽의 기독교문화와 아시아의 기독교문화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빌려 자신을 표현하면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독교문화가 창조되었고, 그것은 서구 기독교문화나 한국 고유문화와 ‘연결되면서도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예배당들이 구체적인 증거물이다. 특히 아름다운 곡선의 한옥 예배당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교회가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_이덕주(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