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경건의 삶의 신학자 만수晩穗 김정준
국내 구약학의 스승으로 불리며 신학자ㆍ신학교육자ㆍ저술가로 왕성히 활동하면서도 고난 받는 목회자로서 외롭게 하나님의 공의를 외친 예언자 김정준 목사를 기억하는가?
만수晩穗 김정준은 1914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숭실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도쿄 아오야마학원, 캐나다 임마누엘대학, 토론토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3년 5월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경주 구정교회, 김천 황금동교회에서 목회했고, 이후 서울 성남교회에서 시무했다.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 교수를 시작으로 연세대 교목,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원장과 한신대 학장을 역임했다.
구약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교육행정가, 에큐메니컬 운동가, 기독교 연합기관 이사장, 편집위원장, 목회자로서 열정을 다해 살았다. 이러한 그의 경력을 보고 사람들은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평하지만,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뿐이다. 가난한 살림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서른셋에 폐병에 걸려 마산 요양소에 입원하여 석 달 시한부 인생을 진단받았으나 1981년 67세까지 살았으니, 그의 고백대로 “다만 은총의 손길에 붙잡혀” 산 인생이었다.
그는 방대한 학문 활동과 함께 신학교 육성 및 토착적土着的 신학 수립, 신학적 교류를 통한 교단 간의 협력체 발전 등에 크게 기여하며, ‘학문과 경건의 조화’, ‘목회와 선교를 위한 교육’이라는 신학교육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섬기고, 학생들에게 새벽기도회를 강조했으며, 경건 훈련에 도움이 될 만한 고전을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보수화되고 획일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에서 이러한 그의 모습이 잊혀져 가는 것이 아쉬운 이때,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 원장 김재현)은 그의 삶과 신앙을 기릴 수 있는 글들을 모아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일곱 번째 책으로 엮어 냈다.
1부는 김정준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던 글들을 모았다. 그의 신학은 삶의 고통 속에서 재해석되어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의 삶을 다룬 내용을 앞부분에 배치한 것이다. 특히 “나의 생애와 신학”은 어린 시절부터 60세까지의 인생 고백이 담겨 있다. 2부는 폐병과 싸우는 데 가장 힘이 된 시편명상 중 일부를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그의 신학사상의 중심 텍스트는 ‘시편’이다. 그의 시편 연구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3부는 그의 목회를 엿볼 수 있는 설교 중에서 택하여 구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부활 신앙, 크리스천의 사회의식 등을 엿볼 수 있다. 4부는 김정준 목사의 신학을 한국 사회에 토착화시킨 ‘민중신학’, ‘한恨의 신학’, ‘목민牧民신학’에 대한 논문을 중심으로 엮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동참하시어 함께 고난당하심으로 새 생명, 새 희망을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억울하고 비참한 고통의 현실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해야 함을 ‘한의 신학’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매우 엄격하였지만 사랑으로 제자를 가르쳤던 사람, 가는 곳마다 목회하며 새벽기도회를 강조했던 사람, 성경 말씀에 충실한 예언자적 설교를 하며 비복음적인 설교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격했던 사람, 단순히 지식인이 아니라 지知ㆍ정情ㆍ의意가 겸비된 학자이자 목회자, 시인이자 문필가로 살았던 사람 김정준. 경건과 신학이 점차 분리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늦은 이삭’ 김정준의 글이 신학과 신앙의 일치를 향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