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피어난 인류 생명의 꽃, 이용도
감리교 목사로 1930년대 장로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시무언是無言’ 이용도 목사. 한편에서는 그를 이단성이 강한 광신적․비윤리적 신비주의자, 기성 교회를 부인한 무교회주의자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예레미야와 같은 영성을 가진 성령운동가, 한국의 3대 부흥사, 한국 기독교 100년을 빛낸 인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용도는 누구인가?
이용도 목사는?
1901년 4월, 황해도 금천군 시변리에서 태어난 이용도는 32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 윤치호가 세운 송도한영서원(이후 송도고등보통학교가 됨)에 1915년 입학한 후 민족 현실에 눈을 뜨고 독립의식을 키워 나갔으며, 그곳에서 양주삼, 김동성, 이강래 등을 통해 기독교 신앙과 함께 민족 자주의식을 배웠다. 그러던 중 3․1운동이 일어났고 이때 체포되어 개성소년형무소에서 2개월간 유치장 생활을 한 뒤로 5년여 동안 감옥을 들락거리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했다. 송도고보를 졸업한 뒤 1924년 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이곳에서 데이밍C. S. Deming, 왓슨A. W. Wasson, 하디R. A. Hardie, 최병헌 교수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1928년 협성신학교를 졸업, 다음 날로 강원도 통천교회에 파송 받았다. 전도사로 부임하여 사역하는 중 극적인 신앙 체험을 하면서 감리교뿐만 아니라 장로교와 성결교 등에서도 초청하는 부흥사가 되었다.
1930년 9월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0월에는 전국주일학교 연합회 간사로 발령받았고, 1931년 5월부터는 경성지방 순회목사로 특별 파송을 받아 신앙부흥운동에 헌신했다. 그의 집회는 성령 중심의 집회로, 영적 감격과 회개의 눈물 기도가 넘쳐났으며, 이에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는 기도 모임(‘평양 기도단’ 등)도 생겨났다. 하지만 1931년 10월 장로교 황해노회에서는 여신도와의 잦은 서신 교환, 소등消燈 기도(불을 끄고 하는 기도), 교역자 공격, 무교회주의자 등의 문제를 제기해 금족령을 내렸고, 평양노회는 1932년 4월 ‘평양기도단’에 활동 제한 조치를 가했다. 이때부터 이용도는 교권과 신앙 전통을 파괴하며, 특히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을 변질시킨다는 이유로 공격받기 시작했다. 결국 감리교 중부연회는 1933년 3월 그에게 면직 처분을 내렸다.
이에 이용도와 그의 동지들은 1933년 6월, ‘예수교회’라는 새로운 교파를 창립했지만, 지병인 폐병으로 고생하다가 그해 10월 2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98년 10월 23차 총회에서 이용도를 복직시키고, 1999년 3월 정회원 자격 복직을 결의했다.
구성과 특징
아직도 이용도 목사를 토착적 성령운동가보다는 이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짙은 가운데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 원장 김재현)은 이용도 목사의 올곧은 ‘예수 정신’을 맛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아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여덟 번째 책으로 엮어 냈다.
이용도는 전문 신학자가 아니지만, 한국 기독교 신학과 세계 기독교에 여느 신학자보다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의 이용도 연구는 형제의 친분을 맺은 변종호 목사가 편찬한 자료에 대부분 의존해 왔다. 변종호는 폐병을 앓던 1931년, 이용도 목사가 인도한 재령 집회 때 회심하고 완쾌되었다. 이후 이용도에게 신앙 지도를 받았으며, 이용도 사후 그의 신앙과 사상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일기, 편지, 그리고 각종 글들을 편찬해 왔다. 변종호는 이단 시비의 딱지를 단 이용도의 글을 보존하느라 수많은 고비를 넘겼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용도가 이룩한 신학 근본에는 거의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자료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용도의 세계관과 신앙과 신학을 보여 줄 만한 자료를 면밀히 살펴 다음과 같이 이 책을 구성했다.
1부는 “주를 따르는 자”라는 주제로, 이용도 목사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 주는 글을 묶었다. 2부에는 ‘고빈비苦貧卑’로 대변되는 ‘시무언의 영성’을 보여 주는 글을 담았다. 이들은 고빈비, 기도와 부흥, 생명역환生命易換에 이르는 시무언의 신앙과 신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3부는 “믿음과 희망을 휘날리며”라는 주제 아래 이용도가 남긴 성극을 모았다. 마지막 4부에서는 장년주일학교 공과에 기고한 신앙 선배―드보라, 예레미야, 시므온과 안나, 도마 등―들에 대한 이용도의 가르침을 담았다. 이용도가 남긴 다양한 형태의 글들은 이용도의 신앙과 삶의 주옥같은 특징들을 잘 보여 줄 것이다.
왜 다시 이용도인가?
이용도의 복음적인 삶과 신앙 사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생명역환’이다. 이는 기도를 통해 인류 생명이 사랑과 정의의 생명으로 바뀐다는, 말하자면 기도와 사랑의 혁명운동이다. 이용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살아 있는 심원한 기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 정의, 자유, 평화, 희망, 기쁨의 생명을 얻어 그렇게 변화될 수 있고, 마침내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외부 세계와 내면의 정신적 차원까지 식민지화되는 악조건에서 이용도의 영성은 그간 동아시아 종교문화 속에서 형성된 조선 전통의 진수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기독교의 영적인 복음과 융합했다. 나아가 조선 전통의 창조적인 변형을 이뤄 낼 수 있었다. 자기 전통의 폐기나 배타적인 자기주장이 아니라 그 전통의 진수와 가치를 기독교의 영적인 진리와의 창조적인 융합을 통해 더욱 심원하고 새롭게 개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