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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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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프랑스혁명, 계몽주의…
18-19세기에 시작된 근본적인 도전에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진행되는 ‘홍성강좌’의 두 번째 단행본
홍성사에서 3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는 홍성강좌의 두 번째 강좌 ‘서양 근대교회사-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7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통합해 그리스도교역사를 전체사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 시리즈는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를 표어로 삼고,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의 경로를 되짚어 보며 차분하게 묻고 찾는 모색의 과정이기도 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행사들이 많지만,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에서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홍성강좌는 교회사의 발전 과정을 장기적 맥락에서 되짚어 보고,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던 개혁의 성과들뿐 아니라 개혁의 운동들이 길을 잃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홍성강좌는 세속사를 전공하는 역사가와 교회사가가 협력하여, 교회사와 세속사를 분리시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적극 통합하려는 시도다.” – 기획위원 박흥식(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한다
특히 이 기획은 그리스도교 역사를 다루는 번역서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한국 학자의 저서들은 아직 드문 현실에서 우리 연구자들의 눈으로 세계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을 새롭게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중에 그리스도교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학자들을 엄선해 강의와 저술을 의뢰함으로써 학술적 가치를 갖추도록 노력했다. 통상적인 시대 구분법에 따라 로마 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세계사를 5학기에 걸쳐 다루는데, 이 기획의 두 번째 강좌이자 시대 순으로 네 번째 순서인 ‘18-19세기’를 경북대 사학과 교수인 윤영휘 강사가 맡아 진행했고, 지금 이 수준 높은 강의를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사・교회사적으로 중요했던 18-19세기, ‘세속화된 사회 속의 그리스도교’가 등장하다
흔히 ‘근대’라 부르는 18-19세기는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혁명, 과학혁명 등으로 세계가 혁명적으로 변화되었기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당연히 그리스도교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우선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시작되었다. 고대 시대나 그리스도교가 사회를 지배했던 중세 때에도 신을 부정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18-19세기는 개인의 수준을 넘어 범유럽적으로 과학의 발견과 이성을 중시하는 사조에 의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특히 프랑스혁명기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이 유럽 사회에 퍼지고 정치,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급격한 세속화 현상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18-19세기는 교회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진행된 두 차례의 대각성 운동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선교는 이성 중심주의와 세속화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교육, 성 역할, 사회 참여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립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점에서 18-19세기는 ‘세속화된 사회 속의 그리스도교’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탈(脫)그리스도교적인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고찰한다
이 책은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그리스도교가 세속 사회의 도전에 대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탐색한다. 종교개혁에서부터 18세기 이전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의 발달로 ‘이성’이 ‘신앙’에 우위를 점하기 이전에 이미 종교전쟁이 보여준 참상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회의가 생겨났음을 지적한다. 또한 미국 독립혁명으로 정립된 정교분리 사회의 모습과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탈그리스도교 사회 등을 살펴보고, 이러한 도전에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서술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두 차례의 대각성 운동과 윌버포스를 필두로 한 영국 복음주의 정치세력인 클래팜파가 주도한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늘어난 노동자의 자녀들에게 공공학교 역할을 했던 주일학교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성의 시대’의 도래 과정을 이해하고,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발생한 부흥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세속주의 사회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맞서는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사회 운동에서 현시대의 그리스도교가 직면한 이슈들에 대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탈그리스도교적인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역사적 실례를 통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크기 148 × 200 mm

차례

기획 취지문
머리말

1장 종교개혁 이후 18세기까지
2장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3장 대각성 운동과 대서양 복음주의 네트워크의 형성
4장 미국 독립혁명과 정교분리 사회
5장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
6장 프랑스혁명과 탈그리스도교 사회
7장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과 교회의 변화
8장 세속화, 그리스도교, 학문(과학, 역사)
9장 종교 생활의 변화: 여성, 청소년, 노동자
10장 근대국가와 그리스도교: 독일, 이탈리아의 통일
11장 선교와 그리스도교의 팽창
12장 20세기를 향하여: 선교, 제국, 문명

참고문헌

저자

윤영휘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워릭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사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전임강사,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영국사, 대서양사, 정치-종교사 등이며, 18세기 대서양 복음주의 네트워크에 관련된 연구로 미국교회사협회(American Society of Church History)에서 수여하는 시드니 미드 상(Sidney E. Mead Prize, 2012)을, 존 웨슬리의 반노예제 관련 기록에 관한 연구로 제7회 역사학회 우수논문상(2018)을 수상하였다.
서양근대사 및 대서양사 관련 주제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좀더 세부적으로는 영국사, 현대 기독교 정치, 대서양 노예무역, 도덕자본(moral capital)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주제로 《Church History》, 《역사학보》, 《서양사론》, 《영국연구》 등 국내외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책속에서

그리스도교와 계몽주의 사이에 명확한 전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더 많은 연구가 유사한 용어와 개념을 사용한 계몽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활기찬 네트워크가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영국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 안에는 장로교의 교의와 전통에 충실하면서 합리주의 사조를 받아들이는 것에 적극적인 목회자들이 존재했다. ‘중도파’(Moderates)라고 불렸던 이들은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통해 교회를 성찰하려 했다. 이들에게 계몽주의는 종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사회의 화합을 증진시켜 그것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보였다.
-<2장_ 과학혁명과 계몽주의>(58쪽)

정치・종교사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 독립혁명은 근대적인 정교분리 사회가 최초로 성립된 사건이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유럽 사회에서 그리스도교는 정부의 보호 속에 독점적 지위 혹은 적어도 우월한 지위를 누려 왔다. 심지어 그들은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그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위는 수정헌법 1조가 공포되면서 이 지역에서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4장_ 미국 독립혁명과 정교분리 사회>(101쪽)

최근 들어 영국의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정치적 사건으로만 보는 학자는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혁명이자, 경제적 변화였고, 종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운동이기도 했다. (…) 우선 그것은 18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특징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기계적 우주관과 이신론의 영향으로 일반인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상실해 가던 유럽의 그리스도교가 18세기 초중반의 부흥운동으로 수세에서 벗어났다면, 18세기 말 영국의 복음주의 정치가들은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가려 노력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사적 측면에서 볼 때, 영국과 미국의 노예무역 폐지주의는 종교가 공적・사적 생활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게 하려는 보다 큰 노력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브라운의 주장은 적절한 평가이다.
-<5장_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157쪽)

프랑스혁명 전쟁이 시작된 이후 나폴레옹의 원정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정복 활동으로 프랑스의 종교정책 또한 유럽 각지에 확산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성 숭배, 최고 존재 숭배, 시민교회의 이념이 전파되었고, 나폴레옹과 교황의 타협 이후에도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새로운 종교정책은 유럽 각지에서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같은 시기에 프랑스혁명 이념을 수용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혁명기와 나폴레옹 시기의 종교 정책은 유럽에서 세속주의를 퍼뜨린 계기이자 동시에 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킨 사건이기도 했다.
-<6장_ 프랑스혁명과 탈그리스도교 사회>(181쪽)

일반적으로 복음주의는 중간계층 사이에서 유행한 신앙의 흐름이었고, 따라서 이들이 전파하려 한 그리스도교 윤리는 중간계층의 도덕률을 반영하고 있었다. 주일학교에서는 기초학습능력뿐 아니라 건전한 생활 습관과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에티켓 등이 교육되었는데, 이는 중간계층의 가치관이 노동자 계급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런 교육을 받은 모든 아이들이 예의가 바르게 되고 신사처럼 행동하게 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생활방식에 대한 동경이 생기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9장_ 종교 생활의 변화: 여성, 청소년, 노동자>(249-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