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그 민낯은 너무나 닮은,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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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 10,800원
최충희
2017.4.13
무선 / 220 Pages
9788936512262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그 민낯은 너무나 닮은, 우리의 이야기
무게 | 282 g |
---|---|
크기 | 140 × 200 mm |
On Air_ 추천의 글
0.01MHz 나그네의 삶
0.02MHz 고통, 빛의 시간
0.03MHz 제자리
0.04MHz 딸의 편지
0.05MHz 5월의 비보
0.06MHz 쇠잔함 속의 가치
0.07MHz 4.5와 5
0.08MHz B 축하파티
0.09MHz 부재와 임재
0.10MHz 30일 전쟁
0.11MHz A형 남편
0.12MHz 제2의 사춘기
0.13MHz 거짓말
0.14MHz 건망증
0.15MHz 마귀들의 회의
0.16MHz 하프타임
0.17MHz 오래된 액자
0.18MHz 인생 필름
0.19MHz 아버지의 빈자리
0.20MHz 어머니의 용서
0.21MHz 버킷 리스트
0.22MHz 치유받을 용기
0.23MHz 우울증과 믿음
0.24MHz 영혼의 보톡스
0.25MHz 잃어 가는 것들
0.26MHz 섬김의 함정
0.27MHz 상처가 쓴 소설
0.28MHz 금이 간 물동이
0.29MHz 오늘의 의미
0.30MHz 하피루
Off Air_ 저자 후기
저는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암 환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저도 약물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말초신경 문제로 잘 걷지 못했습니다. 밤에는 수면 장애가 찾아왔습니다. 면역력 저하로 감염이 잦았고, 단위가 높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해 보름달처럼 퉁퉁 부은 얼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야아! 우리 집은 승려랑 목사가 한집에서 사이좋게 사네그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제게 남편이 던진 한마디.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어 제게 던진 남편의 유머입니다.
투병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교우들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저를 응원해 주셨고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에 힘입어 힘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고, 완쾌된다는 확실한 약속은 없었지만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드리며,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_20~21쪽, ‘고통, 빛의 시간’에서
시숙님을 뵈었을 때는 이미 말씀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시숙님은 저희를 한참이나 애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둘째 동서이신 형님에게 손짓하셨습니다. 형님은 곧 조그만 칠판을 가져오셨는데, 어렵게 펜을 잡은 시숙님은 칠판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온 글씨는 작은 칠판을 가득 메운 ‘왜?’라는 글자였습니다. 칠판을 보는 순간 저희 부부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 이듬해 한국에서 다시 시숙님을 뵈었을 때, 시숙님은 더욱 마르고 쇠잔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시숙님은 우리 부부를 보자마자 예전의 그 작은 칠판을 찾으시더니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힘겹게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쓰신 칠판을 우리에게 보라고 눈짓하셨습니다. 저와 남편은 칠판 위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깜짝 놀라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욥기 13장 15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욥 13:15). _47~48쪽, ‘쇠잔함 속의 가치’에서
아버지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받은 상처는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동서들까지 아버지의 눈밖에 날까 봐 등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새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부덕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하시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뜻밖의 전화를 받은 새어머니는 당황해하시면서도 많이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렇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신 어머니는 며칠 뒤 잠자리에 들기 전, 저희 부부를 불러 놓고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찬송을 부르시고 이사야 말씀을 읽으신 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며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이어지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어느 순간 잦아들었습니다. 그렇게 끊긴 어머니의 기도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_145~146쪽, ‘어머니의 용서’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개입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미 개입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통해 지금 처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깊은 어둠의 수렁에서도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분명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_67쪽, ‘부재와 임재’에서
저는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암 환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저도 약물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말초신경 문제로 잘 걷지 못했습니다. 밤에는 수면 장애가 찾아왔습니다. 면역력 저하로 감염이 잦았고, 단위가 높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해 보름달처럼 퉁퉁 부은 얼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야아! 우리 집은 승려랑 목사가 한집에서 사이좋게 사네그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제게 남편이 던진 한마디.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어 제게 던진 남편의 유머입니다.
투병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교우들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저를 응원해 주셨고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에 힘입어 힘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고, 완쾌된다는 확실한 약속은 없었지만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드리며,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_20~21쪽, ‘고통, 빛의 시간’에서
시숙님을 뵈었을 때는 이미 말씀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시숙님은 저희를 한참이나 애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둘째 동서이신 형님에게 손짓하셨습니다. 형님은 곧 조그만 칠판을 가져오셨는데, 어렵게 펜을 잡은 시숙님은 칠판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온 글씨는 작은 칠판을 가득 메운 ‘왜?’라는 글자였습니다. 칠판을 보는 순간 저희 부부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 이듬해 한국에서 다시 시숙님을 뵈었을 때, 시숙님은 더욱 마르고 쇠잔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시숙님은 우리 부부를 보자마자 예전의 그 작은 칠판을 찾으시더니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힘겹게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쓰신 칠판을 우리에게 보라고 눈짓하셨습니다. 저와 남편은 칠판 위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깜짝 놀라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욥기 13장 15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욥 13:15). _47~48쪽, ‘쇠잔함 속의 가치’에서
아버지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받은 상처는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동서들까지 아버지의 눈밖에 날까 봐 등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새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부덕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하시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뜻밖의 전화를 받은 새어머니는 당황해하시면서도 많이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렇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신 어머니는 며칠 뒤 잠자리에 들기 전, 저희 부부를 불러 놓고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찬송을 부르시고 이사야 말씀을 읽으신 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며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이어지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어느 순간 잦아들었습니다. 그렇게 끊긴 어머니의 기도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_145~146쪽, ‘어머니의 용서’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개입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미 개입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통해 지금 처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깊은 어둠의 수렁에서도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분명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_67쪽, ‘부재와 임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