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출간되어 평신도와 목회자들의 호응을 받은 《주기도문 학교》에 이은, 임영수 목사의 영성 학교 그 두 번째-
고문화(古文化)된 사도신경에서 오늘날 우리 삶에 던지는 통찰력을 재해석해 냈다.
각장마다 더 깊은 공부와 토론을 위한 복습질문을 제공하고 있어 새신자와 소그룹 및 구역별 신앙 교육 교재로 적합하며,
목회자들에게는 사도신경 설교의 텍스트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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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출간되어 평신도와 목회자들의 호응을 받은 《주기도문 학교》에 이은, 임영수 목사의 영성 학교 그 두 번째-
고문화(古文化)된 사도신경에서 오늘날 우리 삶에 던지는 통찰력을 재해석해 냈다.
각장마다 더 깊은 공부와 토론을 위한 복습질문을 제공하고 있어 새신자와 소그룹 및 구역별 신앙 교육 교재로 적합하며,
목회자들에게는 사도신경 설교의 텍스트로 유용하다.
무게 | 250 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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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
1941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세대 연합신학원을 수료한 후 스위스 융 연구소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헬무트 틸리케와 칼 바르트․디트리히 본회퍼, 위르겐 몰트만, 프랜시스 쉐퍼, 안셀름 그륀, 토마스 머튼, 리처드 포스터 등을 깊이 연구했고, 특히 폴 투르니에 박사와는 융 연구소에 있을 당시 직접 만나 깊은 교유(交遊)를 나누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광교회, 남대문교회, 영락교회, 주님의교회에서 목회하였으며 지금은 개신교 영성공동체인 모새골(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임영수 목사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열흘 동안 배우는 주기도문 학교》, 《2주 동안 배우는 사도신경 학교》(이상 홍성사), 《제자로 길들여진 그리스도인》(한국장로교출판사), 《빈집의 위기》(신앙세계사) 등이 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고백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되곤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주문처럼 고백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구원의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새롭게 알아 가면서 그분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머리말 중에서(6쪽)
이 고백은 본래 초대 교회에서 세례식 때 사용되었습니다. 세례 받는 사람들이 지난날에 얽매였던 어둠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장차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결단하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털어놓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성문화(成文化)된 사도신경은, 이것을 ‘고백’하는 사람들로 인해 살아 있는 복음이 됩니다. -‘나(우리)는 믿습니다, 아멘’ 중에서(19쪽)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자리입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이 절망의 자리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의 자리이며, 죽음의 자리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자리에까지 내려가셔서 인간의 삶과 연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중에서(116쪽)
최후의 날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날은 모든 세상적인 가치가 전도되는 날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슬피 울며 탄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이 약속은 의를 위하여 고난 당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더 큰 희망과 용기와 격려를 주는 약속입니다. – ‘하늘에 오르사…… 심판하러 오시리라’ 중에서(147쪽)
“사도신경의 무게와 감격을 되찾아 주는 책”
중학생이 되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다니던 나에게 그것은,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어른들과 함께 대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사도신경’ 암기는 필수 사항이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자랑스럽게 사도신경을 줄줄이 읊었던 첫 예배 때 나는 얼마나 뿌듯했던가! 그렇듯 나에게 있어 사도신경은 어른이 되는 의식에 필요한 예문(禮文)(?)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사도신경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 또한 별로 궁금해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복음을 제대로 알아 가면서 나는 사도신경이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는 것에 적잖은 놀라움을 가지며 좀더 심각하고 의미 있게 외우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고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고백이라는 것은 분명한 대상이 있는 개별적인 행위 아닌가.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라는 대상이나 ‘내가 하는 고백’이라는 주체 의식을 깊이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기독교의 진리를 점검하듯, 특별한 감흥 없이 매주 사도신경을 외웠던 것이다.
《2주 동안 배우는 사도신경 학교》는 사도신경 한 마디 한 마디의 깊은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렇게 사도신경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태도를 묻는 책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와 똑같은 경험이나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도신경이 무게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별다른 감격 없이 예배에 포함되어 있는 기도문처럼 사도신경을 읊조린다.
이에 저자는 사도신경이 기도문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나아가 “고백하는 사람들로 인해 살아 있는 복음이 된다”면서 사도신경에 대한 오해를 풀어낸다. 그리고 ‘믿습니다’와 ‘아멘’이라는 사도신경의 큰 틀을 설명한 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유일하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하늘에 오르사 … 심판하러 오시리라’ 등 핵심적인 열다섯 구절을 깊이 있게 읽어 낸다.
물론 문자에 대한 신학적인 따짐이라기보다는, 저자가 묵상한 것을 다양한 예문 등을 통해 되도록 쉽게 풀어 낸 강해이다. 그래서 그 흐름만 차분히 따라간다면 우리는 소위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의 실체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이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은 ‘사도신경을 배우는 학교’이다. 첫 장을 입학식이라 한다면, 나머지 열네 장을 배우는 2주 동안은 수업을 듣는 셈이다. 나처럼 사도신경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을이 가기 전, 나름대로 가을학기를 선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도신경의 잃어버린 무게와 감동을 되찾게 될 테니 말이다. 책의 서두에는 주님의교회에서 사용하는 나채운 목사의 ‘바로잡은 사도신경’과 영어, 독일어, 라틴어 사도신경 원문이 수록되어 있고, 각 장마다 더 깊은 공부와 토론을 위한 복습 질문이 실려 있으니 깊은 묵상이나 소그룹 공부에도 유익하다.
-글/송도숙(‘빛과소금’ 기자)
[신문기사]
“어떻게 참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인가?”
이제는 눈을 감고 입을 열면 주문처럼 외워진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렇게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사도신경이 어릴 적엔 왜 그리도 외워지지 않았을까. 아마도 사도신경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외워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을 예배의 형식에 속해 있는 하나의 교리나 외워야만 하는 기도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신경 학교》의 저자 임영수 목사는 “사도신경은 기도문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삶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사도신경이 우리에게 주는 참 의미와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나의 고백, 우리의 고백”
사도신경은 고백이다. 종종 회자되듯이 사도신경은 신앙 고백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의 신앙 고백을 줄줄 읽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살아 있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
사도신경은 초대 교회 세례식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세례 받는 사람들이 지난날에 얽매였던 어두운 삶에서 해방되어 장차 오게 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떠나는 과정에서 털어놓는 고백이었던 것이다. 사도신경은 성문화되었지만, 실제로 믿음의 선조들이 신앙의 과정에서 진실하게 내어놓은 고백이었기에 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살아 있는 힘을 갖는다.
스위스 바젤 신학대학의 로흐만(Jan Milic Lochman) 교수가 쓴 《사도신경 강해》에 깊이 감명 받은 저자는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주제로 15회에 걸쳐 설교를 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보편적으로 해석해 온 사도신경의 의미를 벗어나 새롭게 의미를 부여함으로 성문화된 사도신경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고백으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도신경을 나 자신의 고백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신앙을 고백하는 주체가 바로 ‘나’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주체는 언제나 ‘나’입니다. … 그러나 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서로 나누어야 할 복음이기 때문에 나 이외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습니다’가 됩니다.”
고백하는 주체가 나 자신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결국 사도신경은 진정한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는 홀로 된 나가 아닌 하나의 연대감 가운데서의 나이다. 사도신경의 의미를 깨닫고 나의 것으로 고백하는 각각의 나는 결국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나의 신앙 고백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함께’가 되고 ‘우리’가 된다. 이것이 사도신경이 가진 힘이다.
사도신경에 담긴 깊은 의미
또 저자는 사도신경이 나의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사도신경의 각 구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성서에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단일한 시각으로 이해함으로 생기는 오해처럼, 사도신경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 그 폭넓은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도신경의 각 구절을 하나하나 짚어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풀어낸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의미를 태초에 만물을 만든 사건으로만 단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라고 말한다. 사도신경에서 말하고 있는 천지창조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 포괄한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창조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순수한 인간이 되사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의 시작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 곧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온 것은 예수가 순수한 인간의 몸을 입고 나셨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사도신경의 각 구절 속에는 깊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의 신앙 고백은 살아서 숨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어려운 시대. 과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참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인가. 그것은 기독교인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구원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는 그 진정한 고백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식 세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 전반에 걸쳐 관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중요합니다. … 사도신경은 고백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되고는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주문처럼 고백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글/김진아(‘주간기독교’ 기자)
“사도신경은 구원사의 요약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신경이 주는 의미와 도전이 있다면…….
– 요즈음 우리 시대를 다원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문제는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실제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구원사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책 내용을 보면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지는데요. 혹 이전에 사도신경을 접하시면서 개인적으로 남다른 감흥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하신 사건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사도신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가 생겨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나 자신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가진 사도신경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을 기도문이나 교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가 알고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서로 사랑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도신경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주님의교회는 사도신경을 기존 교회와 좀 다른 방식으로 고백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아는데요…….
– 우리 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장로회신학대학 교수이신 나채운 목사님의 ‘바로잡은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원문과 비교해 볼 때 그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저서를 보면 영성에 관한 것이 많은데요, 혹 앞으로 쓰시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 어떤 분야를 다루고 싶으신가요?
– 의도적으로 영성에 관한 책만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관심이 자연히 그 분야에 있다 보니 그것에 관한 글도 쓰게 됩니다. 앞으로 치유에 관한 책과 목회자와 신학생들을 위한 에세이 형식의 목회학에 관한 책을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대담/편집부(쿰회보 2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