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는 삶, 이것이 변혁의 열쇠다!
1. 왜 세상은 부패와 부정직과 탐욕이 득실대는가?
비샬은 1980년 네덜란드 어느 목장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한다(p. 27 참고). 우유를 파는 목장에서 판매원 없이(!) 우유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 같았으면 어림없었다. 아마 우유와 그릇에 있는 돈까지 모조리 가져갔을 것이다.
비샬은 궁금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신뢰에 기반한 경제활동이 가능한데, 왜 인도에서는 불신이 쌓여 부패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걸까? 왜 제3세계 국가에서는 여전히 빈곤과 부정직과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서구 사회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 즉, 복음에 뿌리를 두고 세워진 나라다. 인도에서는 인간 모두가 신이라고 가르치지만 서구에서는 인간은 죄인이고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신다는 성경적 사고가 기반이 되어 있다. 즉 성경적 세계관 바탕 위에 세워진 도덕성이 서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경제생활로 이어졌고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독점적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제도와 가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다. 즉 부자건 가난하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그에 따라 모두가 존엄성을 부여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한 문화로 서구 사회에서는 합리적이고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꽃피웠다. 하지만 지금은 서구를 지탱했던 성경적 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진리를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이 시장을 주무르고 있으며 아이의 낙태를 허용하고 가정은 붕괴되고 학교에서는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동양의 신비주의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 가치관의 붕괴는 이처럼 세상을 부패와 부정직이 득실대로 세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세상을 개혁하는 길, 십자가의 방식으로 돌아가자
비샬은 진리만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회에 퍼져 있는 부패와 부정직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려면 먼저 ‘진리의 빛’으로 사회를 조명해야 한다. 그래서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엡 6:12) 한 것처럼 사회 정의와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단순한 제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거짓의 권력과 권세에 맞서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 권세에 저항하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는 능력으로 가능하다. 예수께서 그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는 이 사회를 혁명이 아니라 섬김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희생으로 변혁시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어 세상으로 가라시면서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부르셨다. 의로움을 위해 고난과 자기희생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근원적 가치관, 욕망 등을 변화시키고 부패로 공고화된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낼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그것이 사회를 변혁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