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생명의 길’을 낸 작은 거인들의 기록
《세상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전 2권)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국민일보〉에 연재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재편집하고 새로운 인물을 추가해 소개하는 교양만화이다. 어린이, 청소년, 부모, 교사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 시대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여섯 인물들의 삶을 간결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1권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국내 인물 세 명이다. 온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운 강아지 똥처럼 글과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 권정생(1937~2007).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거부한 신앙인이자 평생 흙에서 살며 생명을 살린 김용기(1909~1988). 마부인 머슴을 목사로 섬기며 겸손의 모범을 보인 장로 조덕삼(1867~1919). 살아간 시대와 모습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곁에 있는 이들을 아낌없이 사랑했다는 것.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내놓고 가장 약한 생명들을 돌본 일상 영웅들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일대기가 펼쳐진다.
“강아지 똥처럼 한 송이 민들레꽃을 피우겠습니다.”
《세상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1권의 첫 주인공은 아동문학가 권정생이다. 최근 이오덕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연극과 책으로 소개되면서 재조명된 바 있는 권정생의 일대기를 만화 단행본 최초로 선보인다. 만화가 정형기의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한 섬세한 장면 묘사를 통해 권정생의 삶과 이야기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1937년 일본 도쿄 빈민가 시부야에서 태어난 권정생은 열 살 때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난으로 가족들과 흩어져 지냈다. 객지를 떠돌며 얻은 결핵과 늑막염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경북 안동시에 있는 일직교회에 정착해 살며 종지기가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면서 아동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정생의 삶과 문학에는 자연과 생명, 어린이,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이 스며 있다. 그가 그려 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한 존재들이지만, 자신을 희생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영원적 삶의 가치를 품고 있다. 권정생 자신도 평생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으나 늘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먼저 돌보았으며, 1984년 〈몽실언니〉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교회 뒤편 빌뱅이언덕 밑 작은 흙집에서 검소한 생활을 지켰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한 권정생은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인세를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마지막 순간까지 작은 생명들을 살리는 아름다운 본을 보였다.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하여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_권정생의 유언 중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새마을운동의 요람인 가나안농군학교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의 유명세에 비해 김용기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시대에 나라의 중요한 물적 토대를 마련하고 민족의 개척정신을 꽃피우게 한 김용기는 《세상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의 두 번째 인물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1909년 경기도 양주군 봉안마을의 한 유교 가문에서 태어난 김용기는 기독교를 일찍이 받아들인 아버지를 통해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중국과 일본을 지배하겠다는 포부로 만주로 건너가지만,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꿈임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흙에서 사는 농사꾼이 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들인다. 그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근면과 성실을 기반으로 한 애국심으로 부락민들의 생활을 안정되게 했으며, 숱한 고문에도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철저히 거부한 신앙인으로 한국 교회에도 본을 보였다. 1966년 막사이사이상(사회공익 부문)을 수상한 아시아 최초의 농민이 된 김용기는 대학, 정부 부처 등의 초청으로 수많은 강연을 다녔고, 1973년에는 강원도 원성군 치악산 중턱을 개간하여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다. 가나안농군학교의 가르침과 철학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 지도력과 공동체성을 배우기 원하는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 꿈은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근로, 희생, 봉사하며 세상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평화와 영원한 삶을 이루는 데 힘이 되는 것입니다.”
_김용기의 막사이사이상 수상 소감 중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양반과 머슴의 구분이 뚜렷한 봉건시대에 자신의 마부를 목사로 섬긴 조덕삼이 《세상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세 번째 인물로 소개된다. 지금도 한국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권위적인 유습이 많은 편이지만, 신분의 구별이 심했던 1900년대 초에 양반이 머슴을 섬긴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덕삼은 평등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머리뿐 아니라 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신앙인이었다. 조덕삼은 김제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온 테이트 선교사에게 복음을 전해 들은 후 평소에 아끼던 마부 이자익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조덕삼은 자신의 사랑채까지 내주며 예배를 드렸고, 귀천 없이 누구에게나 덕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장로 선출일이 되었을 때, 결과는 놀랍게도 조덕삼이 아닌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뽑혔다. 그럼에도 조덕삼은 이 일을 수치로 여기거나 앙갚음하지 않고 겸손히 섬김의 자리에 머물렀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베푼 조덕삼은 결국 2대 장로로 선출되는데, 그 후에도 조덕삼은 이자익을 살뜰히 섬기며 평양신학교로 입학을 권유하고 목사가 되기까지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분을 뛰어넘는 믿음으로 아름다운 겸손을 보인 그의 인품이 마을 전체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조덕삼의 장례식에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기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_이자익이 장로로 뽑힌 후 조덕삼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