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신부가 우리와 나누고자 했던 통일에 대한 담화
“우리는 오랫동안 통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이
그저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1. 대천덕 신부 10주기, 그의 글로 그를 다시 만나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 곳곳에 정의와 영성을 외치는 파수꾼이었던 대천덕 신부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은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그의 성령론과 성경적 경제 원리 등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의 10주기를 맞아 아들 벤 토레이 신부가 생전에 대 신부가 쓴 글을 엮어 또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주제는 ‘한반도의 통일’이다. 이는 여든을 넘어선 대천덕 신부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았던 사명이었다고 한다. 《대천덕 신부의 통일을 위한 코이노니아》는 바다 건너에서 태어난 벽안의 그가 마음의 고향으로 살았던 이 땅의 다음 세대를 위해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
대천덕 신부의 글은 여전히 깊은 울림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엮은이의 말처럼 “어떤 것은 거의 20년 전에 쓰였는데도 오늘날 쓰인 것처럼” 읽힌다. 이는 미가서의 말씀처럼 정의와 자비, 겸손의 삶을 산 대 신부의 삶이 글에 묻어난 까닭일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 책은 대천덕 신부가 <통일논단>, <신앙계>, <길> 등의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토대로 모은 것이다. 대 신부는 영어로 글을 써 왔지만, 그의 글은 늘 번역문으로만 소개되었다. 벤 토레이 신부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영어 사용자와 한국어 사용자 모두 한 권의 책으로 대 신부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영문(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
2. 코이노니아, 지금 우리가 나눠야 할 비전
대천덕 신부가 세운 예수원은 기도와 사랑의 코이노니아 실험실이었다. 함께 일하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곳. 헬라어인 ‘코이노니아’의 개념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우리말에서 찾기는 어렵지만, 대 신부는 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늘 강조했다. 교회도 코이노니아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인 각자가 코이노니아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첫 글 ‘통일 한국을 위한 영적인 전제조건’에서도 북한의 전체주의와 남한의 무책임한 개인주의를 연결해 줄 유일한 중간 지대로 코이노니아 정신을 꼽는다.
분단 세대가 점점 사라지는 지금, 통일에 대한 비전을 나누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다른 의미의 분단을 맞을 것이다. 이 책에서 대천덕 신부는 남북의 하나 됨을 위해 우리가 마음으로 실천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다각도로 제시한다. 이제 우리가 나눔으로써 ‘통일을 위한 코이노니아’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코이노니아란(아주 적절한 번역은 아니지만 그나마 비슷하게 말하면) ‘함께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인 문제건 실제적인 문제건 지적인 문제건 영적인 문제건 함께 나누고, 지혜를 구하기 위해 함께 만나 기도하고 또 서로 올바른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97쪽, 3부 1장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에서
3. 대천덕 신부의 사명을 잇는 벤 토레이 신부
많은 이들이 벤 토레이 신부도 대천덕 신부처럼 성공회 사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벤 신부는 동방 정교회 전통을 잇는 사도적 교회(Apostolic Church) 소속이다. 어릴 적 예수원을 개척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지만, 그의 주된 사역지는 미국이었다. 대천덕 신부가 소천한 후에 예수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강원도 태백 삼수령(三水嶺)에서 사역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북한을 향한 비전을 심어 주셨기 때문이다.
벤 신부는 세 갈래로 흘러 강을 이루는 발원지 삼수령에서 북으로 흐르는 ‘네 번째 강’ 계획을 펼치고 있다. 북한 개방 이후 효과적인 선교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대천덕 신부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분명 이 단계까지 나아갔을 것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사명은 자연스럽게 북한 선교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벤 신부에게 이어졌다. 벤 신부가 대천덕 신부 10주기를 맞아 통일을 주제로 엮어 펴낸 이 책의 주제 역시 ‘통일’이다. 벤 신부는 머리말에서 이 책에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세속주의자와 종교주의자 모두를 위한 무언가가 있다”고 밝혔다. 예수원이 기도와 노동의 코이노니아 실험실이라면 벤 신부의 사역과 이 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통일의 코이노니아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