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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마르틴 부버

6,500

박홍규
2012. 4. 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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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참된 삶은 인격적 만남에서 시작된다!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참된 만남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

스위스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나와 너》(1923)가 출간되자 “‘나와 너’의 사상이 유럽 세계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생각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다주었다”고 격찬했다. 20세기에 발간된 책 중에 《나와 너》만큼 전반적인 사상계에 넓고 깊은 영향을 끼친 책이 또 있을까? 실제로 오늘날 중요한 신학자로서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에리히 프롬, 카를 하임, 라인홀드 니버, 폴 틸리히, 카를 바르트 등의 신학자와 철학자에게 부버가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그러나 부버의 영향은 신학자나 철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정치학 등 인간을 성찰하고 사회를 통찰하는 모든 학문과 사상에 부버는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나와 너》가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아니 오히려 대상을 사물화하며 인간관계가 피상적으로 되어 가는 오늘날 《나와 너》의 사상은 더 유효하다.
사실 마르틴 부버의 저작이 국내에 꽤 많이 번역되어 있지만 정작 마르틴 부버의 생애를 다룬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남정길의 《마틴 부버》, 최한구의 《마틴 부버의 생애와 사상》은 개신교의 입장에서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부버의 사상을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기존 연구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특정 관점에 서지 않고 ‘인간 부버’를 소개한다. 즉 기존 연구서가 부버의 사상과 생애를 종교적 관점에서 본 것이라면, 이 책은 부버에게 종교성의 옷을 벗기고, 시대의 흐름 안에서 부버의 삶과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
저자는 대석학 조부 밑에서 자라 폭넓은 소양을 쌓게 되는 부버의 어린 시절, 시오니즘과 아나키즘에 빠져 있던 청년 시절, 율법주의에 얽매인 형식적인 유대교를 갱신하기 위해 하시디즘을  연구하던 시기의 부버를 비롯하여 어떻게 부버의 사상이 ‘대화 철학’으로 전환하게 되었는지를  그려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사와 이스라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버의 삶과 생각을 통해 서양 문명사의 줄기를 또 다른 관점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
1차 대전을 기점으로 부버의 핵심 사상이 된 대화 철학에서 ‘독자성’이란 개념은 중요하다. 즉 인간은 독자성이라는 기반에서 서서, 그 기반을 각각 새로운 만남으로 깊이 경작할 때 참으로 마음을 열고 타인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버는 이러한 그의 사상을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참된 교사란 지식의 전도사가 아닌 인격의 교육자라고 말했던 부버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학생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며 수업을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개방적이고 허물없는 수업 분위기를 가능하게 했다. 또 정치적 시오니즘을 비판하고 문화적 시오니즘을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에 아랍-유대 공동 국가를 세우는 운동을 활발히 벌이는 등 아랍과의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던 부버는, 자신의 사상을 비평하는 사람들과도 늘 대화를 나눴다.
부버는 서양 문명은 잘못된 길을 걸어왔고 특히 이스라엘은 많은 잘못을 범했다고 일갈한다. 19세기 말 서양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제기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부버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본래 모습을 통해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 핵심이 바로 대화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었다.

마르틴 부버, 대화 유토피아를 꿈꾸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홀로코스트라는 고통을 겪은 부버는 그 억압에서의 해방을 삶의 ‘만남’에서 추구했다. 그것은 단순히 서양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아니고, 그 대안으로 동양 정신문명의 찬양과 수용이 아니며, 모든 삶의 본래 모습인 ‘만남’과 ‘대화’의 회복을 추구한 것이다. 부버가 말하는 대화란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서로의 생각을 좁혀 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며, 그것을 서로 열심히 듣고 각자의 생각을 진지하게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결론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서로 일치하는 결론을 맺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향한 진지한 노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대화다. 결국 부버가 말한 대화란 치열한 논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인신공격이나 중상모략이 아니라, 정교한 논리에 근거한 이성의 부딪침이다. 흔히 대화라고 하면 투쟁과는 대비되는 유약하고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버의 대화 사상은 유대인이 사상 초유의 대학살을 경험하기 직전, 독일의 현실에 대항하기 위해 생각해 낸 현실 극복의 대안이었다.
부버의 대화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우리의 대화는 어떤가? 놀라운 과학기술의 진보로 오늘날이야말로 대화와 만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미니 홈피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우리는 수많은 말들을 쏟아 놓고 수많은 만남을 갖는다. 웹 상에서 거미줄 같은 인맥을 쌓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고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했다고 하는 그 대화란 어쩌면 일방통행이며, 대화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상 독백과 다름없는 1인 미디어 하에서가 아닌가. 웹 상에서는 부버가 말하는 상대와 반대 입장에 설지라도 상대를 ‘함께 사는 인간’으로 긍정하며 승인하는 과정,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전제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대화가 오갈 듯싶으면 ‘로그아웃’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철학자・만남의 사상가,마르틴 부버

부버가 이 땅에 소개된 지 40년이 넘었다. 현대의 고전이 되다시피 한 《나와 너》도 많은 번역본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만남이 가능한 시대에 사는 우리가 그럼에도 여전히 부버의 사상에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를 주체로 대하지 못하고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관계가 난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부버는 인간을 ‘대화하는 실존’으로 보았다. 또 참된 공동 사회는 ‘나’와 ‘너’가 가능한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부버는 대화의 불가능을 실존적 불신의 가장 심각한 현상이라 보고, 그 불신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신뢰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내부에서 파괴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하여 우리의 대화를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우리의 사회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부버를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나와 너’의 철학자, ‘영원한 당신’ 기독교의 신학자뿐 아니라 사랑의 철학자, 만남의 사상가로 잘 그려냈다. 부버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부버의 사상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 종교적 영향에서 형성되어 왔기에 당시의 사회적 흐름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충실히 그려내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 부버의 사상이 형성되어 왔는지를 꼼꼼히 그려낸다. 이 책을 잘 따라가다 보면 부버의 대화 사상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사상의 방향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끝으로, 부버가 평생 자신의 방에 예수상을 걸어 놓고 기독교도인 독일인과 유대인의 공생을 추구한 점, 어머니가 가출하여 내면의 불안을 안고 있던 그에게 독일인 아내 파울라와의 사랑이 없었다면 타자의 포용을 핵심으로 하는 대화 사상은 있을 수 없었으리라는 점, 유대인을 테러하는 아랍 테러리스트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반대하는 인권 연맹에 동참했다는 것,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로서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과 대립했던 일화 등은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사상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빈에서 태어나 열네 살까지 대석학인 조부 솔로몬 부버 슬하에서 자라며 여러 언어를 배웠다. 빈, 라이프치히, 취리히,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고 1904년 빈 대학에서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의 시오니즘을 주장하고, 형식적 유대교에 대항하는 공동체 신앙 실천 운동인 하시디즘을 연구했다. 팔레스타인에 아랍-유대 공동 국가를 세우는 운동을 벌였으며, 아랍과의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유대 민족의 문화와 정신 부흥에 관심을 갖고 잡지 <유대인Der Jude> 및 <피조물Die Kreatur>을 편집•발행했으며, 로젠츠바이크와 시작한 구약성서의 새로운 독일어역을 완성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종교철학과 윤리학을 강의했으나(1923~1933) 나치스의 박해로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 1938년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을 가르쳤다.

‘나와 너’의 관계를 기조로 한 그의 대화 유토피아 사상은 19세기까지의 서양 중심 세계에 대한 문명론적 반성에서 비롯하여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대화 원리에서 찾은 것으로, 타자와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인간다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1차 대전 후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신학과 철학, 나아가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넓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 공로로 괴테상(1951), 독일 서적출판협회 평화상(1953), 에라스무스상(1963) 등을 받았다.

주요 저작으로 《나와 너》,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길》, 《신의 일식》, 《유토피아 사회주의》, 《예언자의 신앙》, 《하시디즘과 현대인》, 《인간의 문제》, 《열계단》, 《교육 강연집》 등이 있다.

저자

박홍규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법대, 영국 노팅엄 대학교 법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연구하고, 오사카 대학, 고베 대학,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공인 법학을 비롯하여 문학, 예술,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윌리엄 모리스 평전》, 《아나키즘 이야기》, 《내 친구 빈센트》, 《자유인 루쉰》, 《플라톤 다시 보기》,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세상을 바꾼 자본》 등의 책들을 집필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처음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으며, 《간디 자서전》, 《자유론》, 《유토피아》,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 《예술과 기술》, 《인간의 전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머리말
들어가는 말

1장 성장(1878-1900)
1. 출생과 배경
2. 공부
3. 부버 사상의 토대

2장 공동체 (1900-1918)
1. 독일 유대인의 교양주의
2. 유대 르네상스와 하시디즘 연구
3. 유대교 강연
4. 1차 대전

3장《나와 너》(1918-1938)
1. 바이마르 공화국
2. 공동체
3. 란다우어의 삶과 죽음
4. 나와 너
5. 유토피아 사회주의
6. 대화의 교육
7. 독일의 우경화

4장
유토피아 (1938-1965)
1. 팔레스타인
2. 유대와 아랍
3. 전후의 사회 활동
4. 성서 연구, 유토피아, 성인 교육
5. 평화
6. 아나키즘과 기독교

나오는 말
연보
참고문헌

책속에서

부버의 사상이란 어쩌면 간단하다. 요컨대 남이나 세상을 물건 취급하여 ‘그것’이라 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대하며 ‘너’라고 여기자는 것이다. 세상을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즉 서로 떨어진 이기적인 인간들이 대화하고 이해하며 진실한 관계 속에 살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진실한 삶의 길을 나누자는 것이다. …… ‘말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부버의 지적도 이러한 대화 유토피아에 근거한다. 언어가 지닌 참된 의미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상대가 내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기대할 때뿐이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된 대화에서 각자는 상대와 반대 입장에 설지라도 상대를 ‘함께 사는 인간’으로 마음으로 긍정하며 승인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립을 없앨 수는 없어도 참된 대화를 통하여 그 대립을 중재할 수 있다. < 28쪽, ‘들어가는 말’ 에서>

부버는 나-너 관계의 전형으로 소크라테스를 든다. 그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눈 사람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나’를 인간의 상호성을 형성하는 ‘나’, 주관이 아닌 주체성의 ‘나’라고 보았다. 남녀의 사랑이야말로 ‘나와 너’의 전형이자 인간-인간의 영역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사랑이란 상대에게 갖는 특별한 관심과 느낌을 말한다. 그리고 3인칭인 ‘그’나 ‘그녀’가 ‘너’로 와서 머무는 상태를 말한다. 사랑은 배타적이고 유일하다. 즉 너밖에 없다는 유일성과 친숙성이 있어야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은 책임성을 지닌다. 사랑은 ‘너와 나’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는 종속성이 아니다. 사랑은 전체적이다. <187쪽, 3장 ‘나와 너’에서>

부버는 자유 교육에서 자유를 강제의 반대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강제에 대한 반대가 자유가 아닌 교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강제는 소극적 현실성이나 교통은 적극적 현실성이다. 부버는 운명, 자연, 인간이 강제하는 상태의 반대를 운명, 자연, 인간과 더불어 교통하고 결합하는 상태로 보았다. 그리고 자유란 교통의 가능성이다. 교통을 위해 인간은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자유는 가능성으로서 불가피하게 요구되지만 그것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교육을 위해 자유는 필요하나, 자유 자체는 현실화를 시작할 수조차 없는 잠재 상태에 불과하다. 여기서 부버는 교육이란 텅 빈 자유에 어떤 내용을 줄 수 있고, 진동하고 선회하는 자유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209쪽, 3장 ‘나와 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