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15년 앞선 《신학총론》의 저자, 필리프 멜란히톤!
국내 첫 소개되는 그의 전기!
1. 루터의 신학을 루터에게 돌려준 인물
150센티미터의 키에, 목소리는 가늘고, 약간의 언어장애까지 있었던 사람. 그러나 훗날에는 ‘독일의 교사’, ‘유럽의 교사’로 불린 사람, 필리프 멜란히톤. 그는 체계화의 대가요 가톨릭이 탐낸 종교개혁가였으며 언어의 천재였다. 중세 말이던 1497년, 독일의 소도시 브레텐에서 태어난 멜란히톤은 스무 살에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가 되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 운동을 이끌다가 1560년에 사망한다.
루터와 달리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1536)보다 15년 앞서 《신학총론》(1521)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종교개혁 신학을 체계화한 저술로 18세기까지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루터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친 멜란히톤은 히브리어 실력도 루터를 능가하였기에 성경 번역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루터 성경’은 실질적으로 ‘루터‒멜란히톤 성경’인 것이다.
멜란히톤의 삶과 그의 시대, 주변 인물과의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는 국내에 소개되는 멜란히톤의 첫 전기로서, 루터와 칼뱅을 넘어서서 종교개혁 시기를 들여다봄으로 종교개혁의 양상과 그 결과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입문서다. 상세한 옮긴이 주와 원서에 없는 여러 컷의 도판이 내용 이해를 돕는다.
2. 개혁적이면서 중세적인, 투쟁과 모순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는 멜란히톤이 남긴 수많은 저작물과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공적 삶은 물론 사적인 삶까지 보여 주면서 화해주의자 멜란히톤의 모순된 면을 그려 내고 있다. 멜란히톤은 성찬식, 유아세례, 자유의지, 성자숭배 등 종교개혁 당시 제기된 첨예한 문제에 대해 인문주의자와 가톨릭, 재세례파 사이에서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 간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빵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가톨릭의 ‘화체설’과 성찬은 상징적 의식이라는 츠빙글리의 ‘기념설’에 대해 그리스도가 ‘빵 안에’가 아니라 ‘빵과 함께’ 계신다는 ‘활동적 현존’의 논리를 만들었으며, 유아세례를 철저히 거부한 재세례파와 달리 성서적 근거를 토대로 유아세례를 인정하는, 어찌 보면 가톨릭에 가까운 주장을 한 인물이다. 루터와 에라스무스가 벌인 자유의지 논쟁에서 멜란히톤은 루터의 입장을 차츰 벗어나 에라스무스에게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열한 살에 학업을 위해 부모를 떠나 열두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읜 멜란히톤은 24세 무렵 결혼을 했다. 그는 결혼을 그리 원하지 않았으나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또 육신의 약함 때문에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멜란히톤에게 결혼식은 “슬픔의 날”이었고 그는 “이제껏 이렇게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당시 풍습과 달리 동년배와 결혼한 그는 쪼들리는 신혼 생활을 보낸다. 또한 딸의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훗날 크나큰 괴로움을 겪으며 인생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유대인에게 양가적(兩價的) 감정이 있었고, 이슬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전쟁으로 맞서라고 주장하기도 한 그는 점성학을 기독교적 학문으로 생각하여 심취하였으며, 꿈 해몽을 즐겨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가인 동시에 철저히 중세적이었던 멜란히톤의 모습에서 인생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