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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아브라함 2

4,500

김성일
1998. 7. 13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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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최고의 추천셀러 작가 김성일 장로가
4천 년 전의 아브라함을 소설 속으로 초대했다.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지 메소포타미아에서 창조주를 찾아 조상들이 살았던 에블라를 방황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생 여정을 긴박감 넘치게 그렸다. 그 속에 진행되는 사라와의 아름다운 사랑이나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기 위해 모리아 산에 오르는 늙은 아비의 심정 묘사는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더해 준다.

저자

김성일
1940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현대문학>지에 소설로 등단, 1983년 한국일보에 《땅끝에서 오다》를 연재한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1985년에 제2회 기독교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세대 겸임교수이며 이태원감리교회(장로)를 섬기고 있다.

[주요 저작]

○소설
대하 역사소설 동방 | 전5권 | A5신 | 각권 310면 내외
땅끝에서 오다 | 믿음의 글들 22 | A5신 | 360면
땅끝으로 가다 | 믿음의 글들 30 | A5신 | 360면
제국과 천국 | 전2권 | 믿음의 글들 44·45 | A5신 | 각권 236면
뒷골목의 전도사 | 믿음의 글들 64 | A5신 | 236면
홍수 이후 | 전4권 | 믿음의 글들 76-79 | A5신 | 각권 288-312면
땅끝의 시계탑 | 전2권 | 믿음의 글들 88·89 | A5신 | 각권 328면
다가오는 소리 | 믿음의 글들 96 | A5신 | 348면
땅끝의 십자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21·122 | A5신 | 각권 296면
공중의 학은 알고 있다 | 전2권 | 믿음의 글들 133·134 | A5신 | 각권 412·332면
빛으로 땅끝까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45·146 | A5신 | 각권 308·324면
아브라함 | 전2권 | 믿음의 글들 163·164 | A5신 | 각권 312·328면

○간증집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 믿음의 글들 70 | A5신 | 248면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믿음의 글들 125 | A5신 | 280면

차례

《2권》

동반자 / 약속의 땅 / 진심을 찾아서 / 남행 / 바로의 태양 / 벗어나던 날 / 이 땅에 사는 동안 / 왕들의 골짜기 / 아내여 아내여 / 그 눈에 슬픔이 / 신방 / 맹세의 우물 / 나무를 지우고 / 나그네의 길 / 아비의 깃발 / 준비된 그

책속에서

그들은 모두 즐거운 듯이 웃다가 아브람이 좀 초조해하는 것을 보고 서로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아브람은 들러리 처녀들이 모두 물러가기를 기다려서 신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사래, 너는 참으로 아침하늘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구나.” -본문 중에서(2권)

서평

[서평]

“아브라함을 따라서”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작가 김성일 씨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힘입어 우리에게 두 권의 책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중학교 때 교회를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알았던 사람, 아브라함. 신앙의 모델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끝없이 나를 주눅들게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딱딱한 강해서가 아닌 거친 광야와 사막 한가운데서 생동감 있는 한 사람으로 만났다. 김성일 씨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브라함의 삶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의외였다. 성경에 나온 아브라함의 기록(창 11:31-25:11)으로만 소설을 쓴 줄 알았는데, 1권 전체를 통해 하란에서 부름받기 전의 아브라함의 삶을 다른 문헌을 참조하여 작가의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하게 되살려 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어떤 우상을 섬겼는지를, 우르가 어떤 도시였고 그 도시에서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주 잘 그려냈다. 그리고 자기의 욕망 때문에 친구인 아브라함을 저버리는 수칸, 아브라함의 멋진 동역자로 작가가 창조한 가삼, 작가가 아브라함에게 멋진 로맨스와 함께 선물한 매력적인 여인 그두라, 아브라함이 가슴 졸이며 사랑한 여인 사라 등이 엮어 내는 이야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했다가 끝내 앉은자리에서 1권을 다 읽지 않고는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혼탁한 세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찾게되는 아브라함의 고뇌가 마음에 와 닿았다. “왜 사람들은 그분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을까?” 어느새 아브라함의 고뇌를 나 역시 되뇌이며 뒤따라가고 있었다.

여기 작가는 고수였다. 2권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재미없게(?) 시간순으로 풀지 않고, 노년의 아브라함과 사라가 지나온 과거의 일을 하나씩 하나씩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살려 냈다. 게다가 노부부인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랑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그 속에 잘 담아 내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잘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 또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탐욕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만들어서 그 신들과 놀아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주목하셨고 사랑하셨다.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완악한 사람의 마음이 먼저 무너지기를” 기다리셨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그 방법은 순종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 때까지 기다리셨다.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다리셨고,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신다.

올해 우리 출판계는 IMF로 상징되는 경제적 불황과 심리적 불황을 이기기 위해서 영웅 이야기를 펴냈다. 칭기즈칸, 진시황제, 나폴레옹 등 역사 속의 영웅들을 무덤에서 불러 낸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들은 진정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웅이신 하나님과 그의 벗 아브라함을 여러분들도 만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강은수(라브리 협동간사, 쿰회보 98.08-09)

추가정보

[저자의 글]

아브라함……. 내가 어려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잘 살고 있던 곳에서 떠나 늘 자리를 옮겨 다닌 떠돌이었고, 그의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서 자신의 아내를 아내라 하지 못하고 누이라 했던 겁쟁이였으며, 그 아내가 여종에게로 들어가서 자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다시 그녀를 내쫓으라고 하면 그 말대로 내쫓는 공처가였다.

그는 또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아무런 항의도 없이 자기 아들을 잡으려고 칼을 들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보면 그는 도무지 자기주장도 없고 생각도 없는 바보 같은 남자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늘 그를 따라 다니면서 그에게 땅을 주고 복을 준다는 약속을 거듭하셨고, 그의 이름은 본래 ‘아브람’이었으나 그의 나이 99세 때에 만민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는 만민의 아비가 되었다. 지금 아랍 사람들과 전세계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들은 그를 자기들의 조상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카톨릭 교도와 개신교 신자들이 모두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떠받들고 있다. 세계인구의 거의 절반도 넘는 사람들이 다 그를 조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보다도 많게 하리라던 그 약속은 성취된 셈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를 ‘나의 벗’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약 2:2; 사 41:8; 대하20:7). 도대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천지를 창조했다는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불렀단 말인가?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으로 나갔다가 어쩔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다시 교회로 돌아온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그 아브라함에 대한 의문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읽으며 그에 대한 자료들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저 섭씨 40도가 넘는 우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는 아브라함을 만났고 그를 내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나는 그가 살았던 하란이며 그 조상들의 땅 에블라와 또 그가 시날의 연합군을 기습했던 다메섹과 그가 아픔의 칼을 들었던 모리아 언덕으로 그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무너졌다. 나는 그를 내 믿음의 조상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비록 그를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적어도 내 믿음의 목표만은 그 사람 아브라함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이 고백을 여러분께 드리려 한다. 그리고 여러분과 내가 다시 그 벅찬 무너짐의 폭우 속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글/김성일(머리말에서, 쿰회보 9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