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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종교의 두 얼굴

9,600

박충구
2013. 9. 13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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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 온 평화는 참된 평화인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평화부터 21세기 평화운동까지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여정을 돌아보며
평화의 얼굴에 숨어 있던 폭력의 얼굴까지 마주한다

정의가 실현되면 모두가 행복할까?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각자가 자기의 것을 취하며 법이 정하는 바대로 하는 미덕이고, 반면 부정의는 누군가가 남의 재물을 취하고 법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정의에 대한 개념은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의는 공평한 사회를 위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손꼽혀 왔으며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정의’가 적절한 윤리적 실천 과제를 주는 핵심 개념이라 생각했던 박충구 교수는 ≪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을 통해 ‘평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005년부터 아시아의 빈곤한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그간의 이해가 모든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하려면 불의에 대한 고발을 상대가 용인하는 관계가 상정되어야 하지만, 법과 질서가 강고한 기득권층에 서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요구는 자학적이거나 가학적인 폭력을 불러오고 만다. 이런 사회에서 약자가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생존을 건 행위다. 저자는 생명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지 정의가 생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의는 결국 평화의 도구이고 평화는 정의가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희구하는 평화, 정의를 동반한 평화를 어떻게 우리 삶에 꽃피울 것인가?

지금까지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인가?
인류는 늘 평화로운 삶을 꿈꿔 왔다. 아마도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까지 보다 완벽하고 순전한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지 않을까? 앞으로 이 여정을 잘 걸어 나가려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시행착오를 살펴 든든히 대비하며 한 걸음씩 떼야 할 것이다. 이에 이 책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평화롭던 고대 그리스의 평화사상부터 정의로운 평화를 열망하는 현대 평화운동까지 평화의 역사를 쭉 훑어 보인다. 독일과 미국에서 사회와 윤리를 공부한 저자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평화를 수호해 온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평화를 이해하고 실현해 왔는지 되짚는다.
국가나 제국의 존폐, 백성의 생사화복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쟁의 승패에 달려 있던 고대 사회에서 평화는 전쟁의 상대적 개념이었다. 다음으로 구약성서의 샬롬 사상에서 평화사상을 짚어 본 후, 예수의 평화와 초기 교부들의 평화를 살펴본다. 기독교 주류 교회의 평화는 국가나 제국의 생존을 넘어 기독교 세계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평화를 외쳤다. 이를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는 정당전쟁론을 내세우며 전쟁을 조장하고 지원했다. 기독교가 제국의 정치·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같이하면서 예수와 초대 교부들이 간직했던 평화사상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정치·사회·경제적 기득권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소종파,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청교도, 퀘이커 등을 중심으로 이어진 예수와 초대교회의 평화적 전통은 오히려 주류 교회의 비판과 박해를 받아 왔다.
18세기경 정치가 급변하면서 기독교는 편협한 권의를 거부하고 관용과 이해의 문을 열지만, 20세기에 이르러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보다 강한 군사력 확보에 열을 올리느라 분주했다. 그 결과 현재 세계는 자칫 인류를 공멸로 몰아넣을 핵폭탄이 담보하는 평화 안에 살아가고 있다. 과연 ‘정의로운 전쟁’이 ‘정의로운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정의로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종교가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치면서 표면적으로 평화를 품도록 도와 왔지만, 한편 무서운 증오와 폭력을 배양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저마다 참된 평화의 길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종교 안에 평화를 위장한 폭력이나 구원과 축복을 위장한 탐욕도 있었음을 역사가 보여 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안에 폭력을 선교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교세의 확장을 평화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폭력을 감추려고 영성으로, 말씀으로 그럴듯하게 덧칠하는 논리도 비근하다.
종교가 가진 두 얼굴, 평화와 폭력. 우리 삶에도 평화와 폭력은 공존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모든 폭력에서 물러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인지 아니면 평화라는 이름을 앞세워 누군가와 적대하여 싸우고 있는 신앙인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을 권면한다. 다른 종교처럼 늘 평화의 길을 추구해 왔지만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실천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기독교처럼 우리 또한 평화의 이름으로 삶에서 폭력을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안의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때, 진정한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평화의 얼굴 이면에 자리해 온 폭력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내가 당하는 폭력이 아닐지라도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를 위한 평화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박충구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본(Bonn) 대학교 및 미국 드루(Drew) 대학교에서 윤리와 사회 분야를 연구하여 학위를 취득한 후 감신대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 홍콩 중문대학, 대만 타이난 대학, 필리핀 유니온 신학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로 연구와 교수 활동을 했다. 주요 저서로 기독교 윤리사상사 3부작《기독교 윤리사 Ⅰ, Ⅱ, Ⅲ》이 있고,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다룬《한국사회와 기독교 윤리》, 《21세기 문명과 기독교》, 《예수의 윤리》, 《신앙공동체 윤리학》, 《생명복제-생명윤리》등이 있다. 한국 기독교윤리학회장을 역임했고 아시아 평화와 인권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머리말

Ⅰ. 고대 그리스의 평화–에이레네
Ⅱ.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Ⅲ. 구약성서의 평화–샬롬
Ⅳ. 예수의 평화
Ⅴ. 초기 교부들의 평화
Ⅵ. 제국화된 기독교의 평화
Ⅶ. 기독교 세계의 평화–팍스 크리스티
Ⅷ. 종교개혁자들의 평화
Ⅸ. 재세례파 신앙운동과 평화
Ⅹ. 퀘이커 신앙운동과 평화
Ⅺ. 독일 개신교의 평화운동
Ⅻ. 미국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
ⅩⅢ. 세계교회협의회의 평화운동

맺는말

참고도서

책속에서

종교의 폭력은 변형된 모습으로 오늘날 우리 삶에도 기생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폭력의 종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평화로운 종교의 지평을 찾는 길을 모색한다. 나는 이 길에서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형된 폭력임을 깨달았다. 개인, 관계, 집단, 교회, 정치, 경제, 구조 등 곳곳에 기생하는 폭력이 우리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안의 폭력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평화를 누리는 길의 첫걸음이다. _9쪽, 머리말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인식보다 국가나 사회 혹은 집단의 보존이 더 중요했던 시대의 전쟁 영웅 이야기는 비범함과 더불어 비인도적인 잔인성으로 가득 차 있다. 동정과 연민, 관용과 용서, 타협의 논리는 언제나 우환을 불러올 소지가 있어 이내 갈등을 유발할 원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적을 아예 초토화하거나 불안과 갈등의 여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평화란 무서운 살육과 전쟁의 결과였다.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둔 편만이 평화를 노래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 문화 깊은 곳에 배어 있던 정복주의적 평화사상은 결국 로마제국으로 이어져 군사주의가 강화되고 제국주의적인 로마의 평화사상으로 변형되었다. _22쪽, Ⅰ. 고대 그리스의 평화-에이레네 ‘피아(彼我)의 이중성’에서

정치적인 면에서 로마의 평화는 형식적 원리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같이 선전되었으나 실상은 로마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로마인만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로마 병사를 비판하거나 그에 저항하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로마 병사는 일반인들을 불러 노역을 시킬 수 있었다. 로마인의 기준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면서 사회의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었지만 그 평화는 보편적인 평화가 아니라 로마인의 평화였기에 피정복민에게는 억압과 강요와 통제를 의미했다. _46쪽, Ⅱ.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억압자의 평화’에서

예수의 평화는 로마제국의 폭력이 횡행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이 극심한 시대에 선포되었다. 현실 세계에서 고난을 겪는 이들이 품었던 평화, 그리고 현실 세계를 변혁할 동력이 되었던 예수의 평화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 구체적인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하는 내적 동력이었다. _83쪽, Ⅳ. 예수의 평화 ‘변질된 예수의 평화사상’에서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교회는 영적으로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존재라고 자신을 해석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는 역사 저편으로 미루고 현실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대행자를 의미하는 교회론이 자리 잡게 된 셈이다. 로마제국이 흥할 때 교회는 국가권력과 더불어 중세 사회를 지배했고, 제국의 세력이 쇠약해질 때 교회는 국가권력을 초월하는 최고 권력기관으로 지상권(Supremacy)까지 행사하게 되었다. _140쪽, Ⅵ. 제국화된 기독교의 평화 ‘제국의 기독교화’에서

사실 정당한 방어라는 논리는 오늘날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엄청난 군사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군사 게임에 불과하다. 이 게임을 위해 인류 사회는 가난한 대중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생명권을 외면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정당전쟁론의 ‘정당한 방어’라는 개념은 오늘날 달리 해석될 필요가 있다.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핵전쟁의 부도덕성과 고도의 천문학적인 군비 경쟁을 하는 행위의 부도덕성까지 정당전쟁론을 들어 옹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_291쪽, Ⅻ. 미국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 ‘군비 경쟁의 비윤리성’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사람의 평화나 국가의 평화 혹은 이념적 평화를 위한 봉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교회, 사회, 국가에 기생하는 모든 폭력성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평화 사역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주류 기독교는 참된 평화의 길과 폭력의 길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그 결과 평화와 폭력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는 모순을 품고 있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던 다양한 폭력을 제거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 가는 소명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_322쪽, 맺는말에서

추천글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은 아닙니다.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이 책은 예수가 ‘우리’의 평화임을, 기독교의 평화는 ‘전체’의 평화임을 설득합니다. 저자는 조작된 평화를 깨트린 역설의 예수를 품은 채 특유의 뚝심과 끈기로 역사와 인류사에 펼쳐진 종교의 두 얼굴을 추적합니다. 그리하여 평화라는 문패를 달고 호사를 누리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종교의 문을 열어젖히는 아름다운 용기를 보여 줍니다. 신학자가 들려주는 이 연민의 노래로 저는 다시 한 번 ‘제 숨’을 찾았습니다. -홍순관 (가수, 평화박물관 이사, 《춤추는 평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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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화두는 단연 생명과 평화다. 저자는 서양 전통에서 나타나는 평화사상을 소개하면서‘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바로 보게 하는 거울’을 들어 준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밝히고, 우리 스스로 모든 폭력을 물리치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인지, 누군가를 적대시하며 싸우고 있는 신앙인인지 자문하게 한다. 평화를 염원하고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읽어야 할 책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기독교 평화사상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기독교의 평화는 의로운 평화여야 한다. 저자 역시 기독교 평화운동의 목표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폭력을 제거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정의로운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참된 평화를 향한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석성 (서울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