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 온 평화는 참된 평화인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평화부터 21세기 평화운동까지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여정을 돌아보며
평화의 얼굴에 숨어 있던 폭력의 얼굴까지 마주한다
정의가 실현되면 모두가 행복할까?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각자가 자기의 것을 취하며 법이 정하는 바대로 하는 미덕이고, 반면 부정의는 누군가가 남의 재물을 취하고 법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정의에 대한 개념은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의는 공평한 사회를 위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손꼽혀 왔으며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정의’가 적절한 윤리적 실천 과제를 주는 핵심 개념이라 생각했던 박충구 교수는 ≪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을 통해 ‘평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005년부터 아시아의 빈곤한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그간의 이해가 모든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하려면 불의에 대한 고발을 상대가 용인하는 관계가 상정되어야 하지만, 법과 질서가 강고한 기득권층에 서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요구는 자학적이거나 가학적인 폭력을 불러오고 만다. 이런 사회에서 약자가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생존을 건 행위다. 저자는 생명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지 정의가 생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의는 결국 평화의 도구이고 평화는 정의가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희구하는 평화, 정의를 동반한 평화를 어떻게 우리 삶에 꽃피울 것인가?
지금까지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인가?
인류는 늘 평화로운 삶을 꿈꿔 왔다. 아마도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까지 보다 완벽하고 순전한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지 않을까? 앞으로 이 여정을 잘 걸어 나가려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시행착오를 살펴 든든히 대비하며 한 걸음씩 떼야 할 것이다. 이에 이 책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평화롭던 고대 그리스의 평화사상부터 정의로운 평화를 열망하는 현대 평화운동까지 평화의 역사를 쭉 훑어 보인다. 독일과 미국에서 사회와 윤리를 공부한 저자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평화를 수호해 온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평화를 이해하고 실현해 왔는지 되짚는다.
국가나 제국의 존폐, 백성의 생사화복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쟁의 승패에 달려 있던 고대 사회에서 평화는 전쟁의 상대적 개념이었다. 다음으로 구약성서의 샬롬 사상에서 평화사상을 짚어 본 후, 예수의 평화와 초기 교부들의 평화를 살펴본다. 기독교 주류 교회의 평화는 국가나 제국의 생존을 넘어 기독교 세계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평화를 외쳤다. 이를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는 정당전쟁론을 내세우며 전쟁을 조장하고 지원했다. 기독교가 제국의 정치·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같이하면서 예수와 초대 교부들이 간직했던 평화사상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정치·사회·경제적 기득권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소종파,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청교도, 퀘이커 등을 중심으로 이어진 예수와 초대교회의 평화적 전통은 오히려 주류 교회의 비판과 박해를 받아 왔다.
18세기경 정치가 급변하면서 기독교는 편협한 권의를 거부하고 관용과 이해의 문을 열지만, 20세기에 이르러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보다 강한 군사력 확보에 열을 올리느라 분주했다. 그 결과 현재 세계는 자칫 인류를 공멸로 몰아넣을 핵폭탄이 담보하는 평화 안에 살아가고 있다. 과연 ‘정의로운 전쟁’이 ‘정의로운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정의로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종교가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치면서 표면적으로 평화를 품도록 도와 왔지만, 한편 무서운 증오와 폭력을 배양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저마다 참된 평화의 길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종교 안에 평화를 위장한 폭력이나 구원과 축복을 위장한 탐욕도 있었음을 역사가 보여 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안에 폭력을 선교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교세의 확장을 평화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폭력을 감추려고 영성으로, 말씀으로 그럴듯하게 덧칠하는 논리도 비근하다.
종교가 가진 두 얼굴, 평화와 폭력. 우리 삶에도 평화와 폭력은 공존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모든 폭력에서 물러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인지 아니면 평화라는 이름을 앞세워 누군가와 적대하여 싸우고 있는 신앙인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을 권면한다. 다른 종교처럼 늘 평화의 길을 추구해 왔지만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실천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기독교처럼 우리 또한 평화의 이름으로 삶에서 폭력을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안의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때, 진정한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평화의 얼굴 이면에 자리해 온 폭력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내가 당하는 폭력이 아닐지라도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를 위한 평화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