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물이 없는 교회, 재정의 절반을 선교와 구제에 쓰는 교회, 목사를 비롯한 모든 제직의 임기가 정해있는 교회, 전교인이 익명으로 헌금하는 교회, 이 교회를 가능하게 한 목회의 정신은 무엇일까? 약속한 임기 10년을 마치고 주님의 교회를 떠난 이재철 목사가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펼쳐 놓은 ‘새로운 교회’의 ‘새로운 역사(歷史)’. 출간되자마자 많은 목회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킨 추천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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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물이 없는 교회, 재정의 절반을 선교와 구제에 쓰는 교회, 목사를 비롯한 모든 제직의 임기가 정해있는 교회, 전교인이 익명으로 헌금하는 교회, 이 교회를 가능하게 한 목회의 정신은 무엇일까? 약속한 임기 10년을 마치고 주님의 교회를 떠난 이재철 목사가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펼쳐 놓은 ‘새로운 교회’의 ‘새로운 역사(歷史)’. 출간되자마자 많은 목회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킨 추천셀러.
이재철
한국 교회의 대표적 설교자, 한국의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목회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49년 부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1974년 홍성통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회사와 개인 삶에 닥쳐온 위기를 계기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1985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와 목회 수련을 거쳐 198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개척 초기의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사임한 뒤 스위스 제네바한인교회에서 3년간 섬기면서 여러 해외 한인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2001년 귀국하여 개인 복음전도자로 말씀을 전하며 집필에 전념하던 중,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부름을 받아 2005년 7월 10일부터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회복의 신앙》, 《회복의 목회》, 《사랑의 초대》, 대담집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어령 공저)(이상 전자책도 출간), 《새신자반》, 《성숙자반》, 《사명자반》, 《인간의 일생》, 《비전의 사람》, 《내게 있는 것》, 《참으로 신실하게》, 《매듭짓기》(이상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출간),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로마서 설교집 <이재철 목사의 로마서>(전3권), 요한복음 설교집 <요한과 더불어>(전10권), 사도행전 설교집 <사도행전 속으로>(출간 중)가 있다. 이 책들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 진리를 끊임없이 삶과 관련지어 ‘지성과 신앙과 삶’의 조화를 꾀한다. 또한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하며 풀어내는 명료한 논리와 특유의 문체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새신자반》은 몽골어와 베트남어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와 《비전의 사람》은 중국어로 번역되어 현지 교회의 선교 사역에도 쓰이고 있다.
머리말 : 이제 때가 되었기에
1.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 2. 무엇을 모델로 삼았는가? / 3.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했나? / 4. 정신여고 강당 건축은 어떻게 가능했나? / 5. 어떻게 퇴임했나?
맺음말 : 스위스로 떠나며
돌이켜보건대 지금의 주님의교회는 주님의교회 교우들의 역량 속에서 가능했다. 내게 아무리 선한 뜻이 있었다 할지라도 교우들의 역량이 뒤따르지 않았던들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 만남을 주관하신 분이 주님이시오. 우리에게 선한 생각과 뜻과 마음을 심어 주시사 우리를 주님의교회 되게 회복시켜 주신 분도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목회는 회복의 목회였고 그 주체는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이셨다. -본문 중에서
[서평]
“주님을 향한 손가락을 접으며”
내가 저자에게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약관의 나이(?)로 70년대 후반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홍성사’란 이름으로 출판계의 정상에 우뚝 섰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란 신기록을 참 많이도 세웠다. 그 때문에 문서사역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라면, 갑작스레 사업의 일선에서 물러나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들려오기 시작한 그이 독특한 목회 스타일로 인해서였다.
사실 나는 이 목사님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다. 여기저기 전해지는 말들과 또 그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대부분은 그의 책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다. 지난 92년에 나온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믿음의 글들 100번)이란 책과 이번에 나온 《회복의 목회》는 그의 삶과 목회 철학을 엿보게 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목회를 ‘자유(自由)와 회복(回復)’이라고 정의한다. ‘비성경적인 그릇된 모든 인습이나 구습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교회로서의 회복’, 이것이 주님의교회에서 그가 그처럼 무던히 애써 왔던 목회의 지향점이었다. 교회 항존직 임직자의 임기제 도입, 무기명 헌금과 전체 헌금 50%의 선교와 구제비 사용, 남녀 서리집사의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 사고와 시야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도들, 자기 교회건물이 없는 교회 등은 성경이 말하고있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열매인 셈이다. 교회가 성경의 말씀처럼 회복되어 가려는 노력이 있을 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히 정신여고 강당을 건축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러했다.
그는 목회자요 ‘구도자’요 ‘모두의 목사’요 ‘예절자’요 ‘자기관리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자신이 그렇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준다. 원칙의 소중함을 보여 준다. 후임자를 세우기 위한 그의 각별한 노력(三顧草廬)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만이라고 하는 사실을 10년 동안 목회현장에서 ‘확인하고 체험’ 했기 때문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21세기의 교회 개혁은 교회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제대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그는 ‘주님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접으며, 단신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한 교회로 표표히 떠난다.
이 책은 목회의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목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고, 말씀대로 목회하려는 강한 도전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개척목사는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을 위해서 말이다.”
그의 목회와 삶에서 보이는 아름다움(美)은 이 ‘떠남의 미학’에서 연유하는 듯싶다.
-글/김도완(‘목회와신학’ 기자, 쿰회보 98.10)
[저자 인터뷰]
○ 《회복의 목회》가 출간된 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교회 성장’ 위주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책들이 목회자 부문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에서 볼 때, ‘개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선전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특히 이 책은 젊은 목회자들이나 신학생, 평신도들에게 더 큰 반응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동안 목회자들의 관심이 교인들과 동떨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다른 말로 하면, 교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회자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교회가 기복신앙을 강조하거나 목적 그 자체로서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한 교회가 되기를 더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회복의 목회》에 담겨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거론되는 것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 미국의 한인 교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소식들을 가끔 들을 수 있는 반면, 유럽의 한인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신데, 그 교회와 한국 교회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나 차이점이 있을까요?
-신앙의 정서는 제네바 한인 교회나 한국 교회 사이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특별한 점이라면 제가 있는 교회는 어떤 교단에도 따로 소속되어 있지 않고 ‘스위스 개혁교회 연맹’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칼뱅의 종교 개혁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를 갱신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한국적인 신앙의 정서와 이러한 갱신의 분위기가 양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는 총 26개 주가 있는데, 각 주가 철저한 지방 자치로 운영됩니다. 교회의 운영은 ‘종교세’로 충당하는데, 제가 있는 제네바 주에는 종교세가 없어서 교회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에 목회자들의 40퍼센트가 구조조정되었을 정도니까요.
스위스 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무엇인가’라는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응답자 중 47.6퍼센트가 ‘가톨릭’으로, 그리고 44.3퍼센트가 ‘개신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총 91.9퍼센트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대답한 셈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 1, 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종교는 있지만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목회자들의 모임에 가서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리스도인’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제가 불어를 배우는 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성당에 나가지도 않고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지만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고 영세를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가톨릭 교인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즉 기독교라는 것은 이 곳에서 ‘믿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요 ‘문화적 관습’인 것입니다.
○ 어떻게 보면 기독교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지역들보다 더 어려운 선교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러한 사역의 어려움뿐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서 처음으로 혼자 생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적지 않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하나님은 늘 선한 것을 주십니다. 지난 10년 간 주님의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에 전력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간을 가지라고 이 3년의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주신 의미를 찾으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지요. 물론 가족과 헤어져서 사는 생활에 불편함이 있지만, 저 혼자 밥도 해먹고 반찬도 차려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제네바 한인교회의 임기가 3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이후의 행보를 궁금히 여기고 있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미리 세워 놓은 계획은 없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지요. 서울에서 목회하지 않으리라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제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네바에서 제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은혜 안에서 잘 감당하고 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1999년 3월 2일, 집회를 위해 잠시 귀국하셨던 이재철 목사님과
홍성사 편집부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글/편집부(쿰회보 99.03)
[저자의 글]
-지난 6월 21일,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여고 소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그 날이 이재철 목사의 주님의교회 10년 사역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님의교회 목사로서가 아닌 선교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그의 앞날을 축복하며 그 뜻깊은 이별의 순간에 동참하고픈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님의교회 목사로서 마지막 설교를 하는 그의 모습은 교인들이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어색해 할 정도로 의연했다. 목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인들에게 스스로 정한 임기를 알렸고 기도로 준비해 온 일이었기에 가능한 의연함이었을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그렇게 주님의교회 10년 사역을 마감하였다.
홍성사의 설립자이자 발행인이기도 한 이재철 목사가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파송 선교사로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제일 먼저 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말씀을 준비해 오던 장소인 홍성사 3층에서 17일간 두문불출하면서 쓴 《회복의 목회-주님의교회 10년 목회를 마치고》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1998년 7월 1일이다. 주님의교회에서 10년 임기를 마치고 6월 21일 사임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본래는 교회를 사임한 다음날인 6월 22일부터 이 글을 쓸 계획이었다. 말하자면 퇴임 후의 첫 번째 할 일로 이 책의 집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년 전부터 교제를 하고 있던 괌(Guam) 거주 교우들의 요청으로 그 곳을 다녀오느라, 오늘에야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던 것은 벌써 오래 된 일이다. 창립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부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교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교회나 단체들이 나에게, 소위 교회성장에 관한 설교나 강의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사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는 교회성장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목회를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성장이란 주제에 관한 한, 내게는 할 말이 전혀 있을 수가 없었다.
매년 이와 같은 요청과 사양이 반복되던 중에, 나는 언젠가 때가 되면 주님의교회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주님의교회에서 확인하고 체험한 한, 목회의 주체는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이셨다. 주님의교회를 세우시고 오늘이 모습으로 키우신 분은 오직 주님이셨다. 교우들과 내가 한 일이란 단지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 바르게 응답하려 한 것뿐이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선한 생각을 주셨는지, 우리를 도구 삼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펼치셨는지 증언하기 위하여 나는 책을 써야만 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요, 둘째로는 그 동안 내가 위에서 밝힌 이유로 인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함이다.
다만 집필의 시기를 나의 퇴임 이후로 잡았던 것은, 주님의교회에 시무하면서 주님의교회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던 까닭이요, 퇴임 후 이일부터 시작하려는 것은 지금 내게, 주님의교회의 주인 되셨고 주인이시고 또 주인이실 주님께서 주님의교회에서 행하신 일을 증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귀한 기회와 여건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무릎꿇어 감사를 드릴 뿐이다.
-글/이재철(저자, 쿰회보 98.08-09)